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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05. 2020

신선으로 불린 조선의 책장수 ‘조생’

김영주 《책쾌》(이리, 2011)

삶이 그렇듯 독서도 계획대로만 되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그 이름 ‘책쾌’. 지난해 어떤 필요에 의해 읽은 안대회 교수의 책 《조선의 프로페셔널》에 소개된 고수 10명 속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신선으로 불린 책장수. 조선의 책장수 가운데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유일한 존재. 조생의 이야기입니다.


조선 후기 화가 조희룡이 중인·화가·승려 등 42명의 행적을 모아 펴낸 전기 《호산외사 壺山外史》는 ‘조신선’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조신선(曺神仙)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항상 서울 안을 돌아다니며 책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여 동서남북의 존비귀천(尊卑貴賤)의 집들을 안 가는 곳이 없었다아이들과 하인들이 다 그를 가리켜 조신선이라고 하였다간혹 누가 업신여겨 희롱하는 일이 있어도 다만 한 번 웃고 말뿐이었다그의 나이를 물으면 문득 60이라고 말한다. 70세 된 사람이 말하기를자신이 아이 때에 조()를 보았는데 그 때에도 또한 60세라고 말하였다 한다이것으로써 미루어 본다면 백30, 40세는 되었을 것이다그런데 얼굴은 40세도 못 되어 보였다이 사람을 신선이라고 일컫는 것은 병 없이 서거(逝去)하였다는 것뿐이고 다른 이적(異蹟)은 없었다나도 또한 박도량(朴道亮)의 서점(書店)에서 그를 본 일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조생은 서울의 책장수다.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책을 팔러 다녔다. 누가 놀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신선이라 불린 이유는 병 없이 죽었기 때문이지 다른 대단한 무엇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박도량의 서점에서 직접 본 일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조생에 관한 기록은 조희룡의 《호산외사》를 포함해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안대회 교수가 《조선의 프로페셔널》에 소개한 조선 후기의 위항 시인 조수삼의 회고담을 다시 읽어봅니다.


내가 칠팔 세 때에 글을 제법 엮을 줄 알았다선친께서 어느 날 조생(趙生)에게 당송팔가문》 한 질을 사주시면서 이 사람은 책장수 조생이란다집에 소장한 책들은 모두 이 사람에게서 사들인 것이다.”라고 하셨다그의 모습은 사십 남짓 돼 보였다손꼽아 보니 벌써 사십 년 전 일이다그런데 지금도 늙지 않았으니 조생은 정말 보통 사람과 다르다그때 나는 조생 보기를 좋아했고조생도 나를 사랑하여 자주 들렀다나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손자를 안은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조생은 장대한 체구에 불그레한 뺨검은 눈동자에 검은 수염이 여전하다지난날의 조생과 견주어보니기이하도다!



책장수가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면,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여러 사람의 기억에 강렬한 존재로 각인됐을 정도라면 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겠죠. 책을 품은 채 바람처럼 나타났다가는 또 바람처럼 사라지는 어느 사내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가만히 그려 보았습니다. 책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책이었던, 그래서 신선이 된 책장수. 


소설을 통해 피와 살이 엉겨 붙은 조신선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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