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미술의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화가 김환기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의 섬 안좌도다. 지금 주소는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안좌서부길 38-1번지. 김환기의 부친은 백두산의 원목 홍솔을 두만강을 이용해 먼 뱃길로 운반해오고, 서울에서 도편수를 데려와 안좌도 읍동마을에 한옥을 지었다. 그만큼 집안이 부유했던 것. 김환기는 이 집에서 태어났다.
김환기 고택은 정면으로 보이는 안채와 오른쪽 별채로 나뉜다. 안채는 1920년에 지은 것으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지난해 여름 찾아갔을 때는 대대적인 수리 보수를 진행하고 있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말끔하게 새 단장을 마치고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안채 오른쪽으로 다소 높은 위치에 별채가 있다. 김환기가 주로 방학 때 내려와 작업하던 화실로 쓰였는데, 지금은 살림집으로 쓰이고 있어서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그래서 김환기 고택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안채만 보게 된다.
김환기 고택은 안좌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1992년 전라남도기념물로, 2007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김환기 고택이라 적힌 커다란 표지석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1995년에 문화체육부와 19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가 세운 표석이 보인다. 그 뒤로 김환기 고택의 유래를 적은 안내석이 서 있다. 오른쪽에 있는 고풍스러운 대문을 지나 고택 마당으로 들어선다.
안채는 한 변이 짧은 ㄱ자형 기와집으로 왼쪽부터 곳간, 건넌방, 대청마루, 안방, 정지 순으로 꾸며졌고, 정지 앞쪽으로 꺾어져 다시 방 한 칸을 뒀다. 사각 주춧돌 위에 사각기둥을 세운 납도리집 형식이며, 문은 정지의 판장문만 제외하고 모두 띠살문, 벽체는 회벽으로 마감됐다. 대문에서 안채에 이르는 마당에 깔린 박석의 곡선이 참 정겹다. 이 길 하나만으로도 집의 운치가 살아난다.
말끔하게 도배된 세 방은 이 집을 그린 누군가의 그림과 더불어 김환기의 사진과 전시회 포스터로 꾸며졌다. 아궁이가 자리했던 부엌도 옛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왼쪽으로 꺾인 방에는 옛 집기들로 장식됐는데, 낮 동안에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해설사가 머문다고. 마당에는 이 집 식구들이 쓰던 옛 우물 자리가 남아 있다.
김환기 고택은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단아한 기품을 보여준다. 이 일대 도로 이정표를 보면 김환기 고택과 함께 ‘김환기미술관’이 보이는데, 미술관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으므로 부러 찾아다녀 봐야 헛걸음만 하게 된다. 아무튼 김환기미술관까지 들어서면 안좌도는 김환기 덕분에 더 유명해질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