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⑮ 서울옥션 <위대한 만남, 내고 박생광․우향 박래현>
2023년 봄, 박생광 박래현 두 화가의 작품을 대거 선보이는 전시회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이 글의 제목 <찬란한 색채 vs 혁신의 미학…한국화 대가의 만남>은 그때 내가 만든 9시 뉴스의 제목이었다. 박생광은 ‘색채’, 박래현은 ‘혁신’이란 키워드로 표현해본 것.
박생광 화백의 그림을 보면 한복 곱게 차려입은 여인부터, 유구한 문화적 전통, 오랜 신앙의 상징까지, 한국적인 소재와 색채가 강렬하게 화면을 압도한다. 우리 전통 단청 색을 화폭에 입힌 박생광은 우리 것을 찾아 잇겠다는 집념으로 한국 채색화의 새길을 열었다. 화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만날 동경하는 게 차원 높은 좋은 한국화를 그린다고 하는 것. 이게 겨우 내 평생 하나 과제를 완수하려고 들어간 하나의 스타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아내로 잘 알려진 박래현 화백은 반듯한 직선의 선묘와 이국적인 느낌의 인물 표현, 절제된 색채로 1950, 60년대에 한지에 먹과 채색 안료로 그렸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1960년대에 이미 과감한 추상 회화를 실험했고, 70년대에는 섬유와 일상의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으며 한국화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자였다. 하지만 그 빛나는 성취와 달리 아직도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은 자그마치 270여 점. 시기별 주요 작품을 통해 두 대가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한국 채색화의 새 지평을 연 박생광 화백, 한국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박래현 화백. 한국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두 거장의 만남은 이후 가을에 열린 키아프(KIAF)에서 특별전 형태로 다시 한번 선보였다. 이번 경매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경매 출품작은 143점이다. 박생광 화백의 작품으로는 1980년대 화가의 말년을 대표하는 <무당> 시리즈가 단연 눈길을 끈다. 대표작으로 꼽는 1984년 작 <무당12>가 서울옥션 강남센터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백운대 인수동 해질녘>, <꽃가마>, <토함산 해돋이> 등 전통적 소재를 짙은 오방색으로 담아낸 채색화들이 출품작의 중심을 이룬다.
아울러 다양한 소재를 화폭에 담은 수묵화, 인물화와 함께 단청 기법을 적용한 초창기 회화, 일본 채색화의 영향을 짙은 이른 시기의 채색화, 접시에 그린 도자화, 연하장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박래현 화백의 작품으로는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1956년 작 <이른 아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다. 화가가 사실적인 여성 인물화를 주로 그리던 1940년대에 제작한 <단장>, 동양화에 서양의 입체주의 화풍을 접목한 <기도>와 <향연>도 주목할 만하다.
박래현 예술의 특징은 같은 화가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 색채의 번짐과 선, 여백의 미 등 한국적 미감이 두드러지는 1960년대 이후 추상화 작업, 판화, 태피스트리 등 다채로운 작품이 경매에 나왔다. 이번 경매는 지난 여러 차례 전시를 일단락하는 자리로, 그동안 주요 소장가들이 간직해온 두 화가의 작품을 이만한 규모로 다시 볼 기회가 앞으로는 흔치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