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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24. 2024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다

[석기자미술관]⑯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에 가면 기증관이 있다. 박물관에 기증된 소중한 문화유산을 모아 놓은 곳이다. 박물관이 2년에 걸친 새 단장을 마치고 기증관을 공개했다. 2층 한쪽에 640평이 넘는 공간을 할애해 기증유물을 빼곡히 채웠다. 명실공히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 기증한 분들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고, 정성껏 전시공간을 꾸며준 박물관도 고맙다.



지난해 12월에 먼저 문을 연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기증I실)은 ‘나눔’을 열쇳말로 기증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 기증의 의미를 담은 영상 공간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널찍한 공간에 소파가 여기저기 놓여 관람객들에게 좋은 쉼터가 된다.


발걸음을 옮겨 본격적으로 기증유물을 관람할 차례. 기증II실은 ‘문화유산 지키기와 기증’을 주제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는 혼란 속에서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 분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1936년 베를린마라톤에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손기정 선생이 50년이 지난 1986년에야 받은 그리스 청동 투구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청동 투구>, 그리스, 기원전 6세기, 청동, 높이 22cm, 1994년 손기증 기증, 보물


다음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역대 최다 기증자 중 한 분인 동원 이홍근 선생의 기증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이홍근 선생은 평생에 걸쳐 모은 우리 문화유산을 자그마치 1만 점 이상 국가에 기증했다. 도자, 서화, 금속, 토기, 석기, 석조물까지 방대한 영역을 아우른다. 보물로 지정된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 10폭짜리 병풍 <책가도> 등이 대표적이다.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 조선 15세기, 높이 31.8cm, 1980년 이홍근 기증, 보물
<책가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980년 이홍근 기증


또 다른 기증자 수정 박병래 선생은 우리 도자기를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생전에 직접 375점을 엄선해 기증한 뒤 운명처럼 그해 세상을 떠났고, 이후 부인 최구 여사가 41점을 추가로 기증했다. 보물로 지정된 <백자 청화 난초무늬 조롱박모양 병>을 비롯해 작지만, 사랑스러운 우리 백자 유물이 펼쳐진다.     


<백자 청화 난초무늬 조롱박모양 병>, 조선 18세기, 높이 21.0cm, 1974년 박병래 기증


한편, 문중에서 고이 지켜오던 가보를 기증한 사례도 많다. 조선 초 유학자이자 문인화가였던 강희안의 무덤에서 나온 은수저와 구슬은 보배롭고, 오성과 한음의 오성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이 손수 쓴 <천자문>과 <초상>은 실물로 만나는 즐거움이 더없이 크다.     


강희안 무덤 출토품>
<이항복필 천자문>, 조선 1607년, 종이에 먹, 각 면 39.0×24.0cm, 2019년 이근형 기증, 보물
<이항복 초성공신 초상>, 조선 18세기 중반, 비단에 색, 2019년 이근형 기증


국외로 멀리 나갔다가 돌아온 유물들도 있다. 일본으로 반출됐던 <불감과 관음보살>은 박물관 후원조직인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FM)이 2018년에 환수해 박물관에 기증했다. 빛깔과 무늬가 화려한 19세기 <화각함>은 2002년에, 전 세계적으로 남은 것이 극히 드문 고려 후기 <나전 칠 경전상자>는 2014년에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사들여 국가에 기증했다. 16세기 중반 <나전 칠 연꽃 넝쿨무늬 상자>까지 후원조직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됐으니 그 고마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불감과 관음보살>, 고려 말 조선 초 14~15세기, 금동, 은도금,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FM) 기증
<화각함>, 조선 19세기,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
<나전경함>, 고려 후기, 나무, 높이 22.6cm, 너비 41.9cm,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 보물
<나전 칠 연꽃 넝쿨무늬 상자>, 조선 16세기 중반,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FM) 기증


일본에서도 이름난 도자기 수집가였던 재일교포 이병창 선생은 평생 모은 수집품을 일본 오사카에 있는 시립동양도자박물관에 기증했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이 개최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에서 선생이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에 기증한 귀한 백자 유물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마련됐다. 그 많은 백자 중에서도 선생이 유독 아끼던 백자 달항아리는 일본이 아닌 고국으로 보냈으니, 이 어수룩한 달항아리는 외형의 아름다움을 떠나 기증한 이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는 것만 같아 애틋하다.     


<백자 달항아리>, 조선 18세기, 1998년 이병창 기증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 후 중국 뤼순감옥에 갇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일본인 간수 등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글씨 부탁을 받는다. 안 의사가 감옥에서 쓴 글씨는 1972년에 일괄로 보물로 지정됐다. 지난해 서울옥션 경매에도 안 의사의 글씨가 한 점 출품돼 글씨로는 역대 최고가인 19억 5천만 원에 낙찰됐다.     


유물은 일본인 이시가와 다마노스케가 1966년에 우리 국립박물관에 기증한 안 의사의 글씨다. ‘재주가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나무나 진기한 나무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뜻으로, 나라를 잘 다스릴 인재를 써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안중근 유묵>, 대한제국 1910년, 종이에 먹, 1966년 니시가와 다마노스케 기증, 보물


또 하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유물이 바로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락가산을 찾아가 지혜를 구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고려시대에 꽤 많이 그렸졌겠으나 안타깝게도 국내에 남은 실물이 거의 없다. 전 세계에서 46점 정도가 확인됐는데, 국내에 있는 건 5점이 전부. 한국콜마의 윤동환 회장은 국립박물관에 수월관음도가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에 반출됐던 이 귀한 그림을 구매해 국가에 기증했다.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80.0×42.7cm, 2016년 윤동한 기증 (5월 5일까지 전시)


이 밖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점 ‘통문관’의 설립자 이겸로 선생이 기증한 문방사우, 부군인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 수집에 열정을 바친 박영숙 선생 기증 규방용품, ‘성문영어’로 유명한 교육자이자 출판사업가 송성문 선생이 기증한 고문헌 자료, 코리아나 화장품의 창립자 유상옥 선생이 기증한 화장용기, 인권변호사로 토기 사랑이 각별했던 수집가 최영도 선생이 기증한 토기 유물,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와 ‘기와 검사’로 불린 유창종 선생이 기증한 기와 유물, 2005년 일본인 이나가키 데레즈가 기증한 프랑스 화가 폴 자쿨레의 판화도 석 점이 전시된다.     


이겸로 기증 문방구
박영숙 기증 규방용품
송성문 기증 고문헌
유상옥 기증 화장용기
최영도 기증 토기
유창종 기증 기와


그리고 기증관의 대미는 2020년 손창근 선생이 기증한 국보 <세한도>가 장식한다.     


기증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굳은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귀하게 모은 우리 문화유산을 기꺼이 국가에 기증하는 그 마음이 모여 숨 쉬는 공간. 기증관에서 그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한다.     


김정희 <세한도>, 조선 1844년, 종이에 먹, 2020년 손창근 기증, 국보 (5월 5일까지 전시)


전시 정보

제목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

일시: 2024년 1월 12일부터

장소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관

전시품손창근 기증 <세한도>(국보등 1,082건 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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