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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06. 2024

장욱진이 그린 장욱진, 화가들이 그린 장욱진

[석기자미술관]⑱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전시가 얼마 안 남으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 때는 미술기자로 취재에 집중했지만, 이번에는 미술을 사랑하는 관람객으로 내가 보고 싶었던 것만 추려서 보기로 했다. 전시 종료를 앞둬서인지 평일 낮에도 전시장은 인산인해다. 장욱진의 그림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사랑받는다. 전시장을 겹겹이 채운 인파가 그 증거다.     


<자화상>, 1951, 종이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장욱진의 그림에는 장욱진이 많다. 가족도에는 어김없이 화가 자신이 등장한다. 황금 들판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연미복 입고 걷는 저 유명한 자화상뿐만이 아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본에서 발굴해 찾아온 1964년 작 <가족도>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저 작은 그림이 보여주는 장욱진다움도 정겹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낡은 액자까지도 작품의 가치를 더해준다. 옆에 나란히 걸린 1972년 작 <가족도>는 원래 액자도 그림 크기였는데, 이번 전시에서 보니 액자를 좀 더 큰 것으로 바꾼 모양이다.


<가족>, 195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내가 장욱진의 이미지로 가장 즐겨 떠올리는 1978년 작 <가로수>에도 어김없이 화가의 모습이 있다. 전시장에서 장욱진이 그린 수없이 많은 장욱진을 만날 수 있다. 화가는 자신의 수필집 <강가의 아뜰리에> 표지화도 직접 그렸는데, 굵은 선 몇 가닥으로 자기 얼굴을 증명사진처럼 그려낸 재치가 돋보인다.     


<가로수>,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강가의 아뜰리에>, 서울: 민음사, 1975, 초판, 장욱진미술문화재단


하지만 이 그림들은 이번 관람의 목적지가 아니다. 마지막 4전시장의 가장 안쪽 공간에 가면 화가들이 그린 장욱진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만익 화백이다. 지난해 1월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이만익 화백의 회고전 <별을 그리는 마음>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화가가 장욱진 화백을 꽤 많이 그린 사실을 확인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욱진이 서울대 미대에서 교편을 잡았을 당시 제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이만익이었다.     


이만익 <생각에 잠긴 장욱진>, 1972,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이만익 <장욱진 초상>,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이만익이 그린 장욱진 초상 두 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하나는 손에 담배 파이프를 들고 생각에 잠긴 화가의 모습을, 다른 하나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선 모습을 그렸다.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을 확인하게 해주는 그림들이다. 이것 말고도 스케치북에 수채물감으로 그린 초상이 한 점 더 있다.     


이만익 <장욱진 초상>, 1976, 종이에 수채 물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조각가 최종태는 가만히 두 눈을 감고 미소 짓는 화가의 얼굴을 파스텔로 그렸다. 검정 파스텔 하나로도 화가의 특징을 뭐 하나 빠짐없이 다 담아냈으니 그 부드럽고 선한 미소가 화면 밖으로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최종태 <장욱진 초상>, 1990, 종이에 파스텔, 개인 소장


오수환 화백이 그린 장욱진 초상은 화가가 생전에 가장 즐겨 그린 소재였던 까치를 한 손에 얹은 모습을 추상화했다. 장욱진 초상을 장욱진답게 그렸으니 이보다 더 근사한 헌정이 없다. 김정 화백의 연필 드로잉에서 화가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화면 아래 글씨를 보면 1975년 11월 1일에 제자 넷이 스승의 집을 찾아가 술을 마시고 김정의 책에 서문을 받았으며 새벽 2시 15분에 자리를 파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약간 취기가 있어 옷을 벗으셨다.’고 한 그 모습을 쓱쓱 그린 모양이다. 애정이 듬뿍 담긴 그림이다.     


오수환 <장욱진 선생님>,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김정 <무제>, 1975, 종이에 연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운 좋게도 그동안 장욱진 전시회를 여러 번 취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 백미라 할 것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만한 규모와 수준의 장욱진 전시는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전시 기획자의 존재는 화가의 복이라 할 수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선생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작은 그림에 담은 커다란 세계. 그보다 장욱진 예술을 더 잘 설명해주는 수식어는 없다.


전시 정보

제목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

기간: 2024년 2월 12일까지

장소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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