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⑲ 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전 <소산비경>
박대성 화백은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 전국 각지를 사생했다. 마흔아홉 되던 해에 한국화를 현대화해야겠다 마음먹고, 세계 현대 미술의 중심 뉴욕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가장 한국적인 곳은 어디인가. 화가는 고도(古都) 경주를 선택했다.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중국 북경을 자주 다녔다. 일본은 말 할 것도 없다. 수없이 해외를 다니며 세계 곳곳의 예술의 탐구했고, 그로써 내가 갈 길을 결정했다. 내가 선택한 것을 가장 ‘한국적’인 것을 현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2의 고향 경주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1988년 화가는 현대 중국화의 거장 리커란(李可染, 1907~1989)을 만나 먹과 서예의 중요성에 관해 배웠다. 실크로드 여행에서 본 암각화와 상형 문자에서 영감을 얻었다. 드문드문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어오다가 2022년과 23년에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미국에서 여덟 차례 순회 개인전을 집중해서 열었다. 이번 전시는 귀국 보고전 성격을 띤다.
기획전이나 단체전에서 박대성의 그림을 제법 봐왔으나 화가의 개인전을 관람한 건 처음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취재까지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오래 미술을 취재했어도 어떤 화가와는 참 이상하게 인연이 안 닿는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그러다 또 기회가 올지 알겠는가. 또 하나, 최근에 리커란에 관한 책을 손에 넣었는데, 화가의 그림에 리커란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진 이유를 오늘에야 알았다. 역시 모르면 배워야 한다.
화가는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그걸 자기화해서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먹 사용이 자유롭고 구도나 상상력도 참신하다. 그림과 글씨로 유희한다고 해야 할까.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이건 박대성의 그림이구나 할 정도로 개성이 짙다. 그래서 그의 호를 따 ‘소산 산수’라 불렸다. 화가는 스스로 고신라인(古新羅人)이라 부른다. 그림의 묵서를 눈여겨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