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㉓ <나를 그린다 서용선>
전시장에 걸린 자화상 27점. 물론 내보이지 않은 작품은 더 많을 것이다. 멀게는 1995년부터 가깝게는 올해 붓질을 더해 완성한 작품도 있다. 현역 화가 가운데 자기 얼굴을 이토록 많이 그린 이가 또 있었던가. 서용선 작가는 왜 그토록 자화상을 많이 그렸을까. 작가의 말이다.
“자화상은 실제로 그리는 순간 실패하는 그림이에요. 선을 긋는 순간부터 안 닮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은 절대 안 나와요. 그래서 화가로서 가장 비극적인 그림 중의 하나가 자화상인 거죠. 그런 점에선 앞서 얘기했던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점이 있어요.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계속 그려나가는 거죠. 그래도 먼저 그린 그림과 다음에 그린 그림은 차이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뭔가가 담겨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림. 화가는 그런 자기 모습을 꾸준히 그렸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
1995년의 자화상 넉 점은 단색의 드로잉이다. 화가의 눈빛 하며 개성이 강렬하게 표현됐다. 그 뒤로 상당 기간 공백을 거쳐 2012년부터는 거의 매해 자화상이 그려진다. 서용선 작가만의 특징은 그림을 그려놓고 나중에 수정을 가하면 어김없이 그 날짜를 그것도 아주 크게, 잘 보이게 적어놓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가장 최근에 붓질을 가한 자화상은 화가의 어떤 자세를 담았다. 초창기 자화상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작가는 세계 곳곳에서 자화상을 그렸다. 1층 전시장에는 벗은 모습을 그린 전신 자화상도 있다. 자화상 하나만으로 이만한 전시를 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서용선의 자화상은 자화상 자체가 하나의 어엿한 화목(畵目)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토포하우스 서울 2층 전시장은 내가 아는 한 인사동에서 천장이 가장 높다. 미술관을 빼면 이만한 층고를 가진 갤러리는 극히 드물다. 그 덕분에 세로 259cm짜리 두 점과 290.2cm짜리 한 점이 넉넉하게 걸렸다. 강형구 작가를 제외하면 이 정도 규모의 대작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또 있을까 싶다.
운 좋게도 전시장에 나와 계신 서용선 작가를 뵙고 인사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