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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21. 2024

관악산 실경 담은 조선 후기 시화첩 최초 공개

[석기자미술관]㉕ 칸옥션 경매에 출품된 <삼성기유첩>

관악산을 그린 조선 후기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는 없다. 인왕산, 백악산, 북한산, 남산은 그렸어도 관악산의 실제 경치를 그린 산수화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고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칸옥션 2월 경매에 관악산 실경산수화가 실린 진귀한 시화첩이 출품됐다.     


<삼성기유첩>, 1828년, 종이에 수묵, 먹/첩, 34.5×40.5(30면)


경매 번호 104번. 제목은 <삼성기유첩(三聖記遊帖)>. 우리에게는 생소한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박기준(朴基駿, ?~?)이란 이가 지인들과 함께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보존상의 필요로 인해 후대에 누군가가 원래 첩을 낱장으로 해체한 뒤 더 큰 바탕에 일일이 배접해 새로 꾸몄다. 글자가 많이 지워진 표지 정도를 빼면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다.     


매화그림과 서문


삼성기(三聖記)와 삼성기유첩(三聖記遊帖)이란 제목이 거듭 적힌 표지를 넘기면 한 면에 매화 그림이 있고, 다른 면에 서문(序文)이 실렸다. 서문을 쓴 이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강준흠(姜浚欽, 1768~1833). 강준흠은 당시 경기도 시흥의 난곡(蘭谷), 지금의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나고 자랐으니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에 밝았을 것이다.     


서문을 읽어보면 박기준이 화첩을 가져와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고, 유람에 함께한 다섯 명 가운데 강준흠의 집안 조카 둘이 있었고, 그림과 글씨는 모두 박기준의 것이라 밝혀놓았다. 강준흠은 어떤 사정으로 이 유람에 함께하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하면서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 원교 이광사의 솜씨이고, 그림은 당대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의 특별한 필치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런 평가가 어울릴 만큼 그림과 글씨 모두 상당히 높은 품격을 보여준다.     


제1폭 남자하(南紫霞)


서문 다음부터는 박기준이 일행 네 사람과 함께 관악산 일대를 유람하며 그린 그림과 함께 각 경치를 읊은 시가 번갈아 나온다. 순서대로 남자하(南紫霞), 염불암(念佛菴), 삼막사(三幕寺), 망해루 낙조(望海樓 落照), 망월암(望月菴), 불성사(佛聖寺), 불성전록망해(佛聖前麓望海), 동자하(東紫霞), 동작강(銅雀江), 북자하(北紫霞), 여기담(女妓潭)이다. 그림이 모두 11폭이다.     


제2폭 염불암(念佛菴)
제3폭 삼막사(三幕寺)
제4폭 망해루 낙조(望海樓 落照)


제9폭 ‘동작진’과 ‘북자하’ 사이에는 1826년 3월 26일에 서울에 사는 벗들을 초대해 관악산의 여러 봉우리를 유람했다는 박기준이 글이, 맨 뒤에는 서문을 쓴 강준흠의 발문(跋文)이 실렸다. 여기서도 강준흠은 박기준의 글씨와 그림을 다시 한번 칭찬했다.      


그림은 글씨와 한 겨레이다하지만 글씨를 잘 쓴 사람이 반드시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할 수 없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또한 반드시 글씨를 잘 쓴다고 할 수 없는데초생(박기준)은 이를 모두 갖췄으니 타고난 바탕이 융성한 것이다.”     



유람을 떠난 날짜와 참여한 인물, 그림과 시, 서문과 발문까지 빠짐없이 갖춘 이 시화첩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 더욱이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를 그린 조선 후기 그림으로는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의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에 실린 <검지산>과 자하동의 <일간정>을 빼고는 확인된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 시화첩에 실린 그림 11점은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회화 작품이다. 더 나아가 생에 관한 자료나 작품이 많지 않은 박기준이라는 도화서 화원의 예술 세계를 연구하는 데도 결정적인 자료다.     


제5폭 망월암(望月菴)
불성사(佛聖寺)


대표적인 서울 산수 연구자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경매 도록에 실은 작품 해설에서 “관악산을 담은 시화첩으로는 첫 사례이자 귀물(貴物)이라 할 만하다.”면서 서울 답사 때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림의 장소를 하나하나 비교하며 실제 경치가 충실하게 그림에 반영됐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예컨대 제1폭 <남자하> 아래쪽에 석탑과 당간지주가 보이는데, 그림 속 장소에는 지금도 석탑과 당간지주가 그대로 서 있다. 놀랍지 않은가.     


제1폭 남자하(南紫霞)의 석탑과 당간지주


새해 벽두부터 귀한 유물을 직접 열람하는 안복(眼福)을 누렸다. 왜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소중한 유산이 있어야 할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물관이다.     


경매 정보

제목칸옥션 제31회 미술품 경매

경매: 2024년 2월 28(오후 4

전시: 2024년 2월 19()~27()

장소칸옥션 전시장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4길 17 건국빌딩 건국관 1)


제10폭 북자하(北紫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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