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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23. 2024

한국 종교 조각의 거목 최종태의 ‘피에타’

[석기자미술관]㉖ 최종태 기증작품전 <영원을 담는 그릇>

조각가 최종태 선생을 두 번 만나 인터뷰했다. 2010년 3월 12일 법정스님 돌아가셨을 때 길상사에서, 그리고 이듬해 11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때로부터 어느덧 12년 세월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다.     

종교의 본질은 포용이다. 그 본질을 예술다운 예술로 구현한 작가가 바로 최종태 선생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선생은 미륵보살의 온화한 미소와 성모 마리아의 자애로운 표정을 한 작품에 담아 동서양 종교의 경계를 허물었다. 2010년 길상사에서 처음 만난,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이 주는 감동은 쉽사리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종태의 조각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작가가 평생에 걸쳐 깎고 빚은 작품 157점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했다. 천주교는 그 고마움에 화답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상설 기증전시실을 마련해 작품 일부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과거 수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했던 바로 그 터에 세워진 박물관에 전시되는 까닭에 그 의미가 또한 남다르다. 경건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작품이 스며들었다.     


“작가는 삶과 종교 예술이라는 근원적 탐구 주제를 평생의 과제로 삼아 예술 작업을 해왔습니다. 특히 여인과 소녀로 대표되는 ‘인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너머 존재의 본질 즉, 인간 내면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창작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천착해온 작가의 노력은 모든 종교에서 다루고 있는 삶의 성찰 과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대리석, 2023


2월 15일부터 선보이는 첫 전시는 성모와 성모자 중심이다. 전시장 외부 공간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대리석 조각 <기도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작가가 지난해 제작한 신작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청동으로 만든 부조 작품 <순교자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작가는 순교자들의 모습에조차 한없는 평화로움을 빚어 넣었다.     


순교자들, 브론즈, 2000년대

“그가 제작한 가톨릭 미술에서 우리는 오히려 타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그리고 존중을 볼 수 있습니다. 특정 종교의 관습적 영역에 갇히지 않고자 한 작가의 포용적 태도는 평면과 조각,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초월한 표현 방식과 조화를 이뤄 고유한 작품 세계를 이뤘습니다. 마침내 모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경계를 허물고 진정한 형태를 찾았습니다.”     


(위) 그리스도, 브론즈, 2018   (아래) 성모, 브론즈, 2010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하는 성모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새긴 이 작품은 2018년 10월 1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작품이라 한다.     


성모, 브론즈


같은 성모상이라 해도 표정은 다 다르다. 제작연도가 확인되지 않은 이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는 수심이 짙게 드리워졌다. 2008년 작품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성모자를 묘사한 하나뿐인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참 좋다.     


성모성심, 브론즈, 2008
성모자, 유리화, 1994


2021년에 제작된 청동 부조 <십자가의 길>은 16점으로 이뤄진 연작 가운데 여섯 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열여섯 점을 한 공간에서 전시한다면 운보 김기창 화백의 30점짜리 연작 <예수의 생애>를 방불하게 하는 종교적 감동을 주지 않을까. 전작을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십자가의 길, 브론즈, 2021


가장 유명한 도상 가운데 하나인 ‘피에타’는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은 채 비통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지만, 최종태의 피에타에서는 그런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 더구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아 올린 모습은 익숙한 도상과는 거리가 멀다.     


피에타, 브론즈, 1970년대

수채물감과 파스텔로 그린 작품도 나란히 걸렸다. 작가는 2020년에 펴낸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예술가는 영원의 길목에다가 무너지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한다. 허물었다 도로 쌓고 나는 매일같이 집 짓는 일을 하고 있다. 내일이면 그럴만한 집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좌) 성모, 종이에 먹과 수채, 2016   (우) 성모, 종이에 파스텔, 2024
성모자, 나무에 채색, 2014
막달레나의 슬픔, 종이에 파스텔, 2022
성모자, 나무에 채색


■전시 정보

제목: 최종태 기증작품전 <영원을 담는 그릇>

기간: 2024년 2월 15일부터

장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서울시 중구 칠패로 5)

문의: 02-3147-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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