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㉗ 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의 항해>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마중물 성격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유년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진가 구본창의 삶과 예술 여정을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1979년 훌쩍 독일 유학길에 오른 구본창은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교에 입학해 사진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한평생 부단히 새로운 예술의 길을 모색한 구본창의 가장 최근 연작까지 모두 50여 개 시리즈 중에서 선별한 43개 시리즈 작품 500여 점과 자료 600여 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근래 보기 드문 규모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다 보니 관람객으로선 친절한 전시는 아니다. 전시 전체를 제대로 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진가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해도 대중적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고려한 전시 구성으로 보인다. 덕분에 사진가의 전시를 처음으로 오래, 깊이,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구본창이 포착한 피사체는 그 고유의 물성과 의미를 훌쩍 넘어 인격을 지닌 존재, 더 나아가 한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구본창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문라이징> 연작에서 달항아리가 보여주는 표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작가의 달항아리 작업과도 분명하게 다른 고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콘크리트 광화문> 연작은 조각조각 해체된 광화문 부재를 통해 임진왜란, 일제 강점, 6.25 전쟁,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수난의 역사를 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