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㉔ 강예신 개인전 <Dreamy Dimensions>
책을 좋아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책을 소재나 주제로 삼은 미술품에 끌린다. 그러므로 이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강예신 작가의 작품이 내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이렇다. 먼저 나무를 자르고 색을 칠해 책장을 만든다. 그다음 책 표지 이미지를 손톱만큼 작은 종이에 출력해 책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을 감싸 책 모양을 만든다. 책장에 책을 꽂아 넣고, 책장 사이사이 비워둔 공간에 그림을 그려 붙인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책장 작품이 완성된다.
물론 작가에게 직접 들은 것이 아니니 순서가 다를 수도 있지만, 복잡한 공정이 아닐 것이므로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재료는 나무, 종이, 자개이며, 기법으로 그리기와 바느질을 더했다. 책장이라는 물건의 특성상 사각형이 주를 이루고, 사각의 틀을 깬 원형도 여러 점이다.
책장을 가득 채운 손톱만큼 작은 책의 표지 글씨를 읽으려면 별수 없이 작품에 바짝 다가서야 한다. 주로 외국 서적이 많지만, 우리말 책도 제법 된다. 어떤 책이 있는지, 혹 내가 읽은 책도 있을지, 구석구석 눈길을 주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일정 시간을 머물러 있게 하는 건 미술품이 지닌 가장 중요한 미덕일 수 있다.
크고 작은 책이 모인 책장은 그것 자체로 작은 세계를 이룬다. 이런저런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그리고 책장 사이의 넓은 공간에는 작가의 분신이라 해도 좋을 토끼와 고양이가 산다. 작가의 자아를 대변하는 존재라는 ‘이야기 토끼’는 책장이라는 작은 세상의 주인이자 안내자다.
토끼의 자세와 표정은 작가가 각각의 작품에 붙인 특별한 제목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예컨대 나뭇가지 위에 곤히 잠든 고양이 옆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는 토끼의 뒷모습이 그려진 이 작품의 제목은 <아주 멀리서도 그 마음이 보이고…>. 각 작품에서 보이는 토끼의 모습에서 작품 제목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느껴볼 수도 있으리라.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작품에 변화를 주는 요소는 가지런히 꽂힌 책 사이로 다른 자세를 한 책의 존재다. 옆으로 누운 책, 막 책장에서 떨어지는 책,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책 등 다른 존재를 통해 질서정연한 책장의 세계에 미묘한 변화를 줬다. 이렇게 뭔가 조금 다른 존재로서의 책을 찾아보는 것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숨은 재미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빚어낸 현대판 책가도라 할 만하다.
더 트리니티 갤러리가 그랜드 하얏트 서울 LL 층에 전시 공간을 새로 마련했다. 호텔이라는 공간이 익숙하지 않아서 전시장을 찾느라 잠시 헤맸는데, 주 출입구를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한 층 아래로 내려가 복도를 따라 돌면 된다. 전시는 무료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