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㉝ 충북갤러리 기획전 <충북 한국화의 맥>
청운 이열모(1933~2016)는 충북 보은 출신으로 화숙이 아닌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한국화 1세대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월전 장우성을 사사했다. 평생 산수풍경을 향한 열정을 간직하며 농촌의 향토적인 풍경이나 명승, 명소를 직접 찾아 현장에서 직접 사생한 실경산수화를 현장에서 완성하는 독특한 화법을 개척했다.
<향원정(香遠亭)>에서는 작가 스스로 ‘소박한 자연주의’라 일컬었듯이 회화적인 기교를 버린 잔잔한 감동의 여운만으로 붓을 움직여 그려낸 담백한 필선을 감상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미술사학자 정현숙의 전시회 순례기 『서화, 그 문자향 서권기』 (도서출판 다운샘, 2019)에 이열모 화백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하다. 유족이 2015년 작품 268점과 서적 446권을 보은군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미술관 건립이 추진됐다가 무산된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다. 사정이 어떻든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2층에 자리한 충북갤러리가 올해 첫 기획전으로 충청북도와 인연이 있는 한국화가 7명의 작품을 모아 선보인다. 박승무(옥천), 장우성(충주), 이열모(보은), 임송희(증평) 네 화가가 충청북도 출신이고, 김기창, 박노수, 황창배는 충청북도와 연을 맺은 화가들이다. 이들 가운데 큰 어른인 심향 박승무가 19세기 조선에서 태어났고, 나머지 화가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에서 6․25전쟁 사이에 났다.
심향 박승무(1893~1980)는 충북 옥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서화에서 동양화로 변모하는 시기에 활동했다. 옛 그림을 모사하거나 체본을 보고 그림을 배운 다음 자신만의 화법을 고안하며성장한 박승무는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 등 다양한 화목에 화제를 소화하며 특히 설경 산수를 많이 그렸다. 근대 동양화의 전통적 계승자로 독창적 심향식 세계를 구축하며 동양화 6대화가로 추천될 만큼 한국화단에서 최고의 설경 작가로 인정받았다.
1964년 작 <계촌모설>은 그의 작품이 무르익어가는 ‘심향시대’(1940~1980) 작품이다. 이때 작품은 유현(幽玄)보다는 현실감 있는,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실경을 화폭에 담았다.
한 살 터울인 월전 장우성과 운보 김기창은 나란히 이당 김은호를 사사했다. 월전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서울대 미대 교수가 됐다. 남정 박노수가 바로 그해에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니 사제지간이 된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에 서울대 미대에 들어간 창운 이열모, 3년 뒤인 1956년에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 이석 임송희 역시 월전의 제자들이다. 일곱 명 가운데 막내인 소정 황창배는 월전이 학교를 그만둔 이후인 1966년에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다. 화가 7명이 충북을 고리로 하고, 이당 화맥과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연결된다.
월전 장우성(1912~2005)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낙청헌에서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인물화를 배우며 화명을 떨쳤다. 해방 이후에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해 근원 김용준과 함께 ‘신문인화’를 모색했다. 장우성은 전통 서화를 습득하며 새로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전통 화단의 변모의 역사를 같이하며 한국화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송학도(松鶴圖)>에서는 해, 소나무와 지금 막 날아오르려 하고 내려앉으려고 하는 두 학의 모습을 통해 그림에서는 오는 상서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은 1976년 외가였던 청주에 운보의 집을 지으면서 충북과 인연을 맺는다. 청각장애를 딛고 예술로 승화시키며 평생 변화무쌍한 작품을 전개하며 한국화단의 예술적 변천사를 보여준 독보적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해방 이후 왜색 탈피, 민족성 수립을 화두로 수묵이 강조될 때도 색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폭넓은 분야를 소화했다.
가로 3m가 넘는 4폭 병풍 <점과 선 시리즈>에서는 그의 역동적인 붓 터치와 화면 어디서나 자유로운 형상의 변화와 일탈된 느낌의 공간적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남정 박노수(1927~2013)는 충남 연기군 출신으로 청주상업학교에서 안승각으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한국화 1세대로, 1955년 수묵채색화로 국전에서 첫 대통령상을 받았다. 국전에서 여성인물화로 입상했으나, 점차 서정적이고 화사한 산수풍경화를 전개해 나갔다. 전통 화법을 근간으로 근대식 화법도 수용해 화면을 단순화, 평면화하면서 독창적 개성을 발휘해 박노수만의 독특한 한국화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눈이 시리도록 파란 군청은 그의 고유색이 되었다.
작품 <고사>는 명도와 채도가 높은 청색과 황색의 원색 대비를 보여준다.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색상으로 함축적 주제에 장식적인 효과를 더했고, 화선지의 하얀 여백과 대비를 이루며 ‘색면 추상화’를 가능케 했다.
이석 임송희(1938~2022)는 충북 증평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산수화로 인정받아 심전 안중식, 심산 노수현, 심경 박세원에 이어 심정(心井)이라는 호를 받았다.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의 실경산수와 함께 먹색의 농담으로 대상을 표현한 파묵산수를 펼쳐오며 한국 산수화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임송희는 다양한 화풍을 견지하며 특히 의례복이라는 고전적 소재를 선택해 현대인이 선호하는 서구적 외모의 불특정 미인상을 표현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우뚝 솟은 암벽들 사이로 풍경이 사라지고 숲이 드러난다. 중국 장가계(張家界)의 독특한 지형과 경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 <장가계>는 실경산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소정 황창배(1947~2001)는 화단의 명성을 뒤로하고 작고하기 전까지 10여 년을 충북 괴산에 거처를 마련하며 충북과 인연을 맺었다. 기존의 한국화 화법을 과감히 탈피, 정형화된 양식을 벗어버리며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작업 세계를 이룩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한국화의 실험적 창작활동의 정점에 있었다. 황창배는 괴산 작업실 시기에 여러 물성을 활용해 자유분방한 표현을 시도하며 지필묵에 한정된 한국화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형형색색 깃발이 나부끼고 울긋불긋 화려한 색감과 함께 축제의 행렬이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무제>는 꽃상여를 표현한 작품이다. 가로 5m가 넘는 크기에 관람객은 죽음의 행렬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만장에 적힌 망자 김창석(金昌碩)의 정체가 궁금하다. 굵은 글씨는 보도자료에서 가져온 것으로, 잘못되고 어색한 표현만 일부 고쳤다. 충북갤러리는 이름과 달리 미술관이다.
KBS 뉴스 아카이브를 찾아보니 일곱 화가 가운데 생전 인터뷰가 남아 있는 것은 김기창, 장우성, 황창배 세 분이다. 월전 장우성의 육성이 담긴 것은 2005년 2월 화가의 별세 소식을 다룬 뉴스가 유일하다. 운보 김기창은 생전 인터뷰가 제법 많다. 1995년 미술단체 후소회 창립 60주년 기념 전시회 소식을 다룬 뉴스 등 3건이 나온다. 황창배 인터뷰는 2022년 김종영미술관 전시를 다루면서 내가 과거 TV미술관에서 찾아서 뉴스에 넣었다.
■동양화 외길 60년 (김기창 인터뷰)
KBS 뉴스9 1995년 10월 8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55601
■운보 김기창 선생 미수기념전 (김기창 인터뷰)
KBS 뉴스광장 2000년 8월 1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102646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 타계 (김기창 인터뷰)
KBS 뉴스 5 2001년 1월 23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153932
■월전 장우성 화백 별세 (장우성 인터뷰)
KBS 뉴스 9 2005년 2월 28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698713
■[주말&문화] 경계를 허무는 파격의 미학…‘붓을 쥔 자유인’ 황창배 (황창배 인터뷰)
KBS 뉴스9 2022년 8월 27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54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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