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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15. 2024

빛과 그림자가 어울린 환상의 세계

[석기자미술관]㉜후지시로 세이지 탄생 100주년 기념 <오사카 파노라마>

   

‘동양의 디즈니’로 불리는 카게에(影繪), 그림자 회화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 1924~)는 100세가 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20년에 한국에서 열기로 했던 전시가 코로나19로 취소되고, 이듬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이 열렸다. 2022년에는 후지시로 세이지 복촌 스페이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올해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놀랍게도 아직 현역인 작가는 한국 관람객에게 보내는 인사말을 직접 썼다.     


한국에서 저의 빛과 그림자의 전람회를 열게 되었습니다빛과 그림자는 태양과 달불과 같은 자연과 우주의 근원으로 인간과 통하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빛과 그림자의 전람회로 삶의 기쁨의 씨앗이 한국에서 싹터 아름답고 멋진 미래가 세계로 퍼져가길 기원합니다.”     



종이를 면도날로 일일이 오리고 트레싱지를 덧댄 뒤 빛을 비추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즉 빛과 그림자가 드러난다. 기본적으로는 흑과 백으로 작품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화면에 색채를 더하거나 움직임을 준다. 원화 자체가 작품이기도 하고, 그림자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불꽃놀이 (1958)
갓을 쓴 지장보살님 (1954)


후지시로 세이지는 평생에 걸쳐 동서양의 수많은 동화를 그림자 회화로 만들었다. 1층 전시장에서는 작가의 주요 작품으로 <도깨비의 여행>, <갓을 쓴 지장보살님>, <난쟁이의 이사>, <세 개의 오렌지>를 비롯해 <서유기>, <목단기>, <인어공주>, 그림형제의 동화 <난쟁이와 구둣방> 등 동서양의 명작이 두루 소개된다.     


인어공주 (1976)


작가는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사슴이 맺어준 색시>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1948년에 창간된 일본의 생활 정보 잡지 <삶의 수첩>에 장장 40년 동안 220편이 넘는 작품을 실었는데, 1973년에 잡지에 실은 동화를 모아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두 권짜리 책을 낸다. 이 책에 한국의 이야기 <개와 고양이와 구슬>, <선녀와 나무꾼> 두 편이 실렸다. 이번 전시에서 <선녀와 나무꾼> 작품 14점을 볼 수 있다.    


선녀와 나무꾼 (2023)
선녀와 나무꾼 (2023)

 

1층과 지하 1층 전시장을 잇는 공간에서는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를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다. 1954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일본에서는 유명한 작품으로, 훗날 영화와 비디오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고 한다. 직접 내레이션을 맡은 후지시로 세이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 (1954년 초연)

  

1층이 동화 중심이라면 지하 1층에는 그림자 회화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걸렸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로 워낙 유명한 <금각사>는 황금빛으로 찬란한 그림 자체도 무척 아름답지만, 그림 앞에 수조를 설치해 물에 비친 건축물의 아름다움까지 더해 환상적이다. 이렇게 전시장 곳곳에 수조를 설치해 그림자 회화 고유의 멋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금각사 (수조) (2009)


지하 1층에서 내 눈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성서 이야기>다.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홍해를 건너는 장면부터 노아의 방주 등 구약성서에 담긴 이야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보여주는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에 매달림, 부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그림자 회화의 거장이 만들어낸 성서 이야기는 또 다른 영적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치 운보 김기창 화백 필생의 걸작 <예수의 생애> 연작에서 받은 감흥과도 같았다.     


바다를 건너는 모세 (1986)
노아의 방주 (2021)
최후의 만찬 (1980)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거장들의 예술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앞서 예술의전당 전시를 놓쳤기에 후지시로 세이지라는 대가의 예술을 직접 감상할 기회를 얻은 건 큰 행운이었다. 미술기자로 전시를 직접 취재하고 뉴스를 만들어 100세를 맞은 거장의 노고에 보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전시가 얼마 안 남았다.     


전시 정보

제목후지시로 세이지 탄생 100주년 기념 <오사카 파노라마>

기간: 2024년 4월 7일까지

장소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문의: 02-774-4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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