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定林寺)는 백제 사비도읍기(538~660)에 세워진 사찰이다. 긴 세월에 절집은 모두 사라지고, 가운데 탑만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왔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고려 때 만든 기와 조각이 나왔는데, 여기에 한자 13자가 확인됐다.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 고려 현종 19년(1028)에 이 절이 정림사로 불렸음을 확인해주는 기록이었다. 그리하여 절터는 정림사지,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게 된다.
부여 정림사지가 일찍이 국가지정문화재유산 사적 제301호로 지정된 바 있고, 정림사지오층석탑도 일찌감치 국보로 지정됐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정림사지와 석탑도 세계유산에 포함됐다.
대개 오래된 사찰들이 산에 깃든 것을 생각하면 낮고 너른 평지에 자리한 절집의 존재는 이채롭다. 10여 년 이곳을 찾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세계유산 등재 이후 주변 환경을 더 가꾸고 다듬은 것 같다. 그때는 없었던 정림사지박물관도 새로 들어섰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그것 자체로 무척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혔고, 세련된 상승감과 더불어 살짝 들린 옥개석 기단부의 곡선도 참 세련됐다. 탑이라는 것이 본디 사리장치였고 불자들의 기도 장소였음을 생각하면 그 앞에 서서 탑을 올려다보는 이들의 마음에 신심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으리라. 동서남북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아름답다.
탑의 몸에 사방으로 글자가 꽤 많이 남아 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 사비성을 침공해 평정하고 1층 탑신에 새겨놓은 글자도 보인다.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700년 역사의 왕국 백제는 그렇게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1,4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탑만 홀로 남아 그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니.
새로 지어 올린 강당 건물 안에는 석불이 한 점 놓여 있다. 정림사지석불좌상이라 불리며 일찍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머리와 보관은 처음 만들어진 그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이다. 파괴와 마멸로 인해 불상의 형태를 상당히 많이 잃었다. 불상이 서 있는 자리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었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한다. 팔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부처님의 얼굴엔 어찌 저리도 은은한 미소가 가득한가.
정림사지박물관에 잠시 들러 1전시실 정림사지관과 2전시실을 백제불교역사관을 둘러본다. 백제인의 꿈과 땀이 밴 역사의 현장. 정림사지는 부여 문화유산 답사의 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