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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탐방기⑤ 백제 왕조의 마지막 수도 ‘부소산성’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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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공주시, 백제 시대에 웅진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는 군사적 요충지로는 훌륭한 곳이었지만, 지리적으로 좁고 외져 한 왕조의 수도를 조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까닭이다. 성왕 16년(538) 봄, 백제는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바꿨다.


지금까지의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면, 사비는 사전에 잘 준비된 계획도시였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해발 96.4m) 일대에 부소산성을 필두로 삼충사, 고란사, 궁녀사, 반월루, 사자루, 낙화암, 군창지, 수혈병영지 등 백제 유적이 많다. 그래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이 일대를 묶어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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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은 일대를 머리띠 두르듯 빙 두른 테뫼식, 이를 둘러싼 포곡식이 혼합된 형태의 산성이다. 부소산성이란 현판이 달린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원하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오른쪽 길로 가야 삼충사(三忠祠)를 만날 수 있으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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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충사는 백제의 마지막 충신으로 알려진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는 사당이다. 1957년에 처음 지었고, 1981년에 다시 지었다.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백제문화제 때 세 충신을 기리는 삼충제(三忠祭)를 지낸다. 의열문(義烈門)이란 현판이 걸린 정문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마치 호위하듯 좌우로 서서 보일 듯 말 듯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살짝 가리고 있다. 삼충사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뜰 왼쪽엔 삼충사중건사적비(三忠祠重建事蹟碑)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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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문(忠義門)을 지나면 삼충사 편액이 걸린 사당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당 안에는 세 충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가 좌평(佐平) 흥수(興首), 왼쪽이 좌평 성충(成忠), 오른쪽이 계백 장군이다. 사당을 등지고 입구 쪽을 바라보는 눈맛이 제법 시원하다. 좋은 자리에 사당을 세웠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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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충사를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청량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걷다 보면 운치 있는 누각 두 곳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먼저 부소산 서남쪽 언덕에 자리한 반월루(半月樓). 이곳에 오르면 부여읍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이 자리에 군사적 목적의 수루(戍樓)가 있었으나 어느 시기에 사라지고, 현재의 누각은 1972년에 새로 지었다. 반월(半月)이란 이름은 부소산성의 옛 이름인 반월성에서 따온 것으로, 누각에서 보이는 백마강의 모습이 마치 반달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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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사자루(泗泚樓)가 나온다.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누각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부여시 임천면에 있었던 관아 정문을 떼서 옮겨와 현판을 바꿔 단 것이라 한다. 사자루라는 현판 글씨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글씨이고, 반대편, 즉 백마강 쪽에 걸린 현판 글씨 ‘백마장강(白馬長江)’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건물의 자리앉음새도 기가 막히지만, 현판 글씨 보는 맛 또한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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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백마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마침내 그 유명한 전설의 장소 낙화암(落花巖)에 다다른다. 낙화암 위에 백화정(百花亭)이란 이름의 자그마한 정자가 있는데, 사비성이 함락될 때 꽃다운 목숨을 잃은 궁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1929년에 세웠다고 전한다. 그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높이는 백마강 수면에서 50m 정도다. 삼천궁녀 운운하는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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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을 제대로 보려면 아래 강가로 내려가 고란사(皐蘭寺)라는 아담한 절집을 둘러본 뒤 돛배를 타야 한다. 강에서 바라봐야 낙화암의 형태가 비로소 온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암벽에 낙화암이라 새겨진 붉은 글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 한다.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암벽을 쳐다보게 만드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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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 흐르고 흘러 부여 부근에 들어오는 구간을 따로 백마강(白馬江)이라 부른다. 강은 이곳을 지나 논산천을 끌어들인 뒤 강경을 거쳐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타고 서해로 흘러간다.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란 뜻을 품었다는 백마강. 이곳에서 서서히 사그라들었을 700년 백제 왕조의 최후를 강은 기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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