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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Apr 02. 2024

문화유산 탐방기⑤ 백제 왕조의 마지막 수도 ‘부소산성’


지금의 공주시, 백제 시대에 웅진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는 군사적 요충지로는 훌륭한 곳이었지만, 지리적으로 좁고 외져 한 왕조의 수도를 조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까닭이다. 성왕 16년(538) 봄, 백제는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바꿨다.      


지금까지의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면, 사비는 사전에 잘 준비된 계획도시였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해발 96.4m) 일대에 부소산성을 필두로 삼충사, 고란사, 궁녀사, 반월루, 사자루, 낙화암, 군창지, 수혈병영지 등 백제 유적이 많다. 그래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이 일대를 묶어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으로 명명했다.     



부소산성은 일대를 머리띠 두르듯 빙 두른 테뫼식, 이를 둘러싼 포곡식이 혼합된 형태의 산성이다. 부소산성이란 현판이 달린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원하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오른쪽 길로 가야 삼충사(三忠祠)를 만날 수 있으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삼충사는 백제의 마지막 충신으로 알려진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는 사당이다. 1957년에 처음 지었고, 1981년에 다시 지었다.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백제문화제 때 세 충신을 기리는 삼충제(三忠祭)를 지낸다. 의열문(義烈門)이란 현판이 걸린 정문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마치 호위하듯 좌우로 서서 보일 듯 말 듯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살짝 가리고 있다. 삼충사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뜰 왼쪽엔 삼충사중건사적비(三忠祠重建事蹟碑)가 서 있다.     


충의문(忠義門)을 지나면 삼충사 편액이 걸린 사당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당 안에는 세 충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가 좌평(佐平) 흥수(興首), 왼쪽이 좌평 성충(成忠), 오른쪽이 계백 장군이다. 사당을 등지고 입구 쪽을 바라보는 눈맛이 제법 시원하다. 좋은 자리에 사당을 세웠음을 알게 된다.     



삼충사를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청량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걷다 보면 운치 있는 누각 두 곳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먼저 부소산 서남쪽 언덕에 자리한 반월루(半月樓). 이곳에 오르면 부여읍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이 자리에 군사적 목적의 수루(戍樓)가 있었으나 어느 시기에 사라지고, 현재의 누각은 1972년에 새로 지었다. 반월(半月)이란 이름은 부소산성의 옛 이름인 반월성에서 따온 것으로, 누각에서 보이는 백마강의 모습이 마치 반달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사자루(泗泚樓)가 나온다.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누각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부여시 임천면에 있었던 관아 정문을 떼서 옮겨와 현판을 바꿔 단 것이라 한다. 사자루라는 현판 글씨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글씨이고, 반대편, 즉 백마강 쪽에 걸린 현판 글씨 ‘백마장강(白馬長江)’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건물의 자리앉음새도 기가 막히지만, 현판 글씨 보는 맛 또한 각별하다.     



여기서 백마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마침내 그 유명한 전설의 장소 낙화암(落花巖)에 다다른다. 낙화암 위에 백화정(百花亭)이란 이름의 자그마한 정자가 있는데, 사비성이 함락될 때 꽃다운 목숨을 잃은 궁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1929년에 세웠다고 전한다. 그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높이는 백마강 수면에서 50m 정도다. 삼천궁녀 운운하는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낙화암을 제대로 보려면 아래 강가로 내려가 고란사(皐蘭寺)라는 아담한 절집을 둘러본 뒤 돛배를 타야 한다. 강에서 바라봐야 낙화암의 형태가 비로소 온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암벽에 낙화암이라 새겨진 붉은 글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 한다.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암벽을 쳐다보게 만드는 포인트다.     



금강이 흐르고 흘러 부여 부근에 들어오는 구간을 따로 백마강(白馬江)이라 부른다. 강은 이곳을 지나 논산천을 끌어들인 뒤 강경을 거쳐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타고 서해로 흘러간다.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란 뜻을 품었다는 백마강. 이곳에서 서서히 사그라들었을 700년 백제 왕조의 최후를 강은 기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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