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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08. 2020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전시회

《한국 근현대인물화》(갤러리현대, ~2020.3.1.)

감히 단언합니다. 올해 최고의 전시라고. 전시장을 채운 작품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더군요. 본관인 현대화랑과 신관인 갤러리현대 건물에 나눠 걸린 그림이 70여 점입니다. 한 곳만 봐도 아득해집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훌륭한 작품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전시회가 가끔 있습니다. 못 보면 두고두고 한이 되죠. 애써 도록을 뒤적거려봐야 쓰린 마음만 더 커집니다. 자고로 그림 앞에 설 일입니다. 마치 소중한 사람을 대면하듯 그림과 마주 보고 눈을 맞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화질 사진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전시장에서 직접 그림을 만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더 절실해졌습니다.


신학철 <지게꾼>, 2012, 캔버스에 유채, 90.5×116.5cm, 부여문화원 소장


전시장에 수두룩한 좋은 작품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도 유독 마음이 끌리는 그림은 따로 있기 마련이죠. 바로 이 그림이 그렇습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이 그림은 그 어떤 인물화보다도 강렬한 미적 체험을 선사합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저 무거운 짐은 생의 무게를 가늠하게 하죠. 힘겹기만 한 삶. 저 짐만큼 두 어깨에 얹힌 고뇌. 지게꾼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 그림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그 무엇을 자극합니다. 그것이 고향에 대한 향수라는 틀에 박힌 추억이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죠. 그렇습니다. 그런 인생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졌던 앞선 세대에 대한 고마움이어도 좋습니다. 지게꾼을 압도하는 저 커다란 짐에서 저는 강렬한 생의 의지를 읽었습니다.


김관호 <해질녘>, 1916, 캔버스에 유채, 127.5×127.5cm, 도쿄예술대학 소장 [이미지제공: 갤러리현대]


70여 점 모두 좋은 작품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참 좋은 작품, 우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이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그림들은 서양화 1세대들이 일본 유학 시절에 그린 그림들입니다. 일본 도쿄예술대학에 소장된 우리 화가들의 그림 6점이 한꺼번에 전시에 나왔습니다.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더욱이 미술관도 아닌 갤러리 전시에 이런 귀중한 작품들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워낙 이례적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이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가 다시 오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봐야죠. 한국의 화가가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로 미술사에 기록된 김관호의 <해질녘>은 물론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유학한 화가들의 자화상도 참 좋습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법입니다.


김환기 <항아리와 여인들>, 1951, 캔버스에 유채, 54×120cm, 개인 소장 [이미지제공: 갤러리현대]


인물화를 주제로 한국 미술 100여 년 역사를 돌아보는 뜻깊은 전시입니다. 전시를 보고 나면 인물화를 역사의 자화상이라 부르는 이유가 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죠. 이미 입소문이 꽤 났는지 평일 오전에 갔는데도 전시장이 붐비더군요. 멀리 지방에서 일부러 전시를 보러 상경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안구 정화. 좋은 그림을 보는 행복감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기를 즐깁니다. 도시 생활에 잔뜩 찌들고 흐려진 안구가 말끔하게 정화되는 신비 체험을 하게 해준다고. 이렇게 좋은 걸 혼자 볼 순 없죠. 그래서 좋은 전시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안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하실 거예요! 라고요.



전시정보

제목: 한국 근현대인물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기간: 202031일까지

장소: 갤러리현대

작품: 인물화 70여 점


최민화 <식사>, 1992, 캔버스에 유채, 97×130.3cm, 개인 소장 [이미지제공: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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