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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13. 2020

없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전시회 도록

《한국 근현대인물화》(갤러리현대, 2019)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전시’란 제목으로 얼마 전 브런치에 소개한 전시회 <한국 근현대인물화 –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의 도록입니다.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전시인 것처럼, 없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도록입니다. 이런 전시 도록은 그것 자체로 훗날 미술사의 귀중한 사료가 되기 때문에, 뒤늦게 따로 구하려고 해도 웬만해선 손에 넣기 어렵습니다. 아주 세심하게 잘 만들어진 훌륭한 미술 교재입니다.



그림 좋아하는 저는 도록보다 훌륭한 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번듯한 도록은 꽤 값이 비쌉니다. 좋은 종이에 원작의 색을 최대한 생동감 있게 살리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죠. 그림을 직접 구매해서 소장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도록은 그림을 소유하고 싶은 그런 평범한 이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는 꽤 고급스러운 책입니다.     


도록을 다시 넘겨보면서 전시장에서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그림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다시 가서 꼭 봐야겠습니다. 도록에 수록된 그림 71점 가운데 그렇게 마음을 흔든 작품 몇 점을 전문가들의 해설과 함께 옮겨 놓습니다.     


이응노 <거리 풍경 – 양색시>, 1946, 한지에 수묵담채, 50×66.5cm, 개인소장


“<거리 풍경 양색시>에서 노출이 심한 옷에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에 대한 이응노의 시선은 측은하다. ‘바라볼 때 눈물이 앞을 가리워마지 않노라. 빨리 반성하야 새옷을 벗고 직장으로 직장으로, 제이국민의 현모가 되어 주기를 바라노라.’는 글과 함께 비판적인 시선을 화면에 담았다. 그러나 한편, 편견에 가득 찬 눈으로 양색시를 바라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색안경을 낀 모습으로 묘사해 한 편의 시사만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김인승 <욕후(浴後)의 화장(化粧)>, 1955, 캔버스에 유채, 45.5×37.5cm, 개인소장


누드 계열이지만 일상성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성장하고 앉은 여성 좌상이 아니라 화장 중인 은밀한 일상을 드러내는 인물화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다던가 속옷을 입은 채로 재현되는 인물은 나체화보다 다른 사회적 신분의 여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화면 속의 여인은 우측면상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화장의 마지막 단계인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의자에는 분홍색 원피스가 걸쳐져 있어서 외출을 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의자의 구도와 배경의 창, 경대의 위치 등으로 보아 김인승이 구도를 잡기 좋아하는 방식이어서 상황을 제시한 모델을 그린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녀가 누구이든 이 작품에서의 인물은 조용히 앉아 꽃 대신 다가오는 미인도가 아니라 1950년대 중반의 일상을 나타내는 표지적 의미의 존재로 등장한다.”     


오윤 <애비>, 1981, 종이에 목판, 35.3×34.5cm, 개인소장

 

“<애비>는 이름 없는 저 애비가 마주친 세상의 위험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어깨를 오른손으로 감싼 채 보호하고 있다. 아마도 뒤로 뻗은 왼손에는 미구에 닥쳐올 악인을 무찌를 무기가 쥐어져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절정은 화폭 중상단을 가로지르는 하얀 띠다. 애비의 입과 코에 닿아 있는 띠는 애비의 말소리와 숨소리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그래서 두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빛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작품이 품고 있는 힘과 내뿜고 있는 간절함을 생각할 때 아주 당연한 일이다. 걸작이란 그런 것이다.”     


홍성담 <봉선화>,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95×91cm, 작가소장

  

홍성담의 <봉선화>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우리 곁에서 전쟁과 인간, 여성을 보는 남성의 시선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위안부할머니를 그렸다. 너무도 씩씩해서 봉선화 꽃이 없다면 결코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소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멸찬 모습이다. 전범 국가 일본이 전후 70년이 지났음에도 단 한 마디 사과의 말조차 없음을 일깨운 건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 국가도 아니고 그 잘난 정치인도 아니며 모든 걸 다 가진 세상의 남성들도 아니다. 오직 살아남은 그 소녀들이다. 그래선가, 홍성담의 <봉선화>가 이토록 슬픈데 저토록 아름다운 것은.”     


도록의 표지를 떼어내 활짝 펼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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