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May 21. 2024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가꾸는 것이 예술이다!

석기자미술관(52)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여의도샛강생태공원


한강에는 섬이 여럿 있다. 가장 큰 섬은 여의도다. 일터가 여의도에 있는 까닭에, 어느덧 24년째 여의도를 다닌다. 섬 여의도와 육지 영등포를 사이에 작은 물이 흐른다. 섬과 육지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해서 ‘샛강’이라 부른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작은 내가 흐르는 아름다운 생태공원이다. 하지만 한강공원과 달리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과거 이곳은 잡풀이 무성하고 고인 물에서 썩은 내가 진동하는 버려진 땅이었다. 1997년이 돼서야 강바닥을 파내 물이 흐르게 하고, 강 주변으로 풀과 나무를 심고, 통나무 다리를 놓아 산책로를 꾸몄다. 하천 풍경이 제 모습을 찾으면 강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되살아난다. 샛강 일대를 지금 모습으로 살려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이었다.     


    

서울 여의도 자연생태공원 개장 (KBS 뉴스9 1997.09.2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78092     


선유도공원 시간의 정원


가까이에 또 다른 섬이 있다. 여의도보다 훨씬 작고 밤섬보다는 큰 선유도다. 직장이 있는 여의도에서 가까운 곳에 터전을 잡다보니 휴일이면 자연스럽게 운동 삼아 산책 삼아 선유도에 간다. 한강 한가운데 섬이라 과거에 정수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쓰임을 다한 뒤 서울시가 공원으로 꾸몄다. 2002년 옛 정수장 건물 골조를 그대로 살린 국내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이 그렇게 탄생했다.     



선유도공원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남쪽에서 육교를 건너 무지개다리를 넘는 길, 또 하나는 한강공원과 연결되는 양화대교를 타는 길이다. 요즘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계절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들도 많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선유도공원의 존재는 큰 축복이다. 이곳 또한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작품이다.     


예술의전당 모형 사진
아모레퍼시픽 사옥
제주 오설록
아시아선수촌, 아시아공원 기본설계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조경가 정영선의 손길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니. 적어도 한 번 이상 내가 가본 곳을 기준으로 하면 탑골공원, 광화문광장, 경춘선숲길,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예술의전당, 휘닉스파크, 호암미술관, 제주 오설록, 파주출판단지, 국립중앙박물관 등등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얼마 전에 다녀온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앞 전통정원 ‘희원’이 그중 압권이다.     


호암미술관 희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b.1941)이 대학원생이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이룩한 작업 세계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자리다. 이름만 들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60여 가지 프로젝트 관련 자료가 대부분 최초로 공개된다. 파스텔과 연필 그림, 수채화, 청사진, 설계도면, 모형, 사진, 영상 등 자료 500여 점이 빼곡하다. 전시 제목은 정영선이 좋아하는 신경림 시인의 시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사유원 풍설기천년 전경


예술이라는 것이 무슨 값비싸고 화려하고 고상하고 거창한 것이겠는가. 우리가 매일같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예술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예술이 우리 삶에 줄 수 있는 것이 뭔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조경은 남녀노소의 다름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예술이다. 그저 그것이 예술이라는 걸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뿐.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듯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정원들이 모든 이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정영선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클럽하우스 (사진: 김용관)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클럽하우스 (사진: 김용관)
남해 사우스케이프 스파 & 스위트 (사진: 김용관)


경남 남해에 있는 천혜의 휴양지 사우스케이프 역시 정영선의 작품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울린 사우스케이프의 아름다운 풍광은 건축사진가로 유명한 김용관의 작품 4점으로 만나볼 수 있다. 미술관 야외 전시마당과 종친부마당에는 이 전시를 위한 정원이 새롭게 꾸며졌다. 전시 자체가 더없는 휴식이다.   

  

전시 정보

제목: <정영선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기간: 2024년 9월 22()까지

장소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문의: 02-3701-95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