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51) 임채욱 개인전 <북한산길>
임채욱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연 사진전 <인터뷰 설악산>에서였다. 인화지가 아닌 한지에 뽑아낸 사진은 마치 한 폭 수묵화와도 같은 그윽한 멋을 자아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작가는 ‘입체사진’이라는 것도 선보였다. 설악산 부처바위 사진을 한지 10장에 나눠 인쇄한 뒤 8m 높이로 이어 붙이고 손으로 구겨서 완성한 대형 작품은 사진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후 낙산에서 인왕산, 가야산, 북한산 백운산장, 인수봉을 거쳐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봄, 작가가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연 사진전 <블루마운틴>은 작은 사립미술관 전시였는데도 엄청난 반향을 얻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직 우리 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쪽빛'을 담은 임채욱의 사진 코로나 시국이라는 답답한 현실에 갇힌 이들에게 더없이 큰 위로를 건넸다.
■사진이야 수묵화야? 한지에 담긴 설악산 비경 (KBS 뉴스 9 2016.01.0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211644
■카메라로 그려낸 쪽빛 산수화, 팬데믹 시대 위로하다 (KBS 뉴스9 2021.04.1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60795
이후 <블루마운틴>이란 이름으로 다섯 차례 전시를 연 임채욱 작가는 우리 산에서 찾아낸 바로 그 ‘쪽빛’을 담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산에 오른다. 작가가 수시로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과 사진을 보면 말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쩌면 그렇게 부지런한지 모른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면을 담겠다는 일념 때문이리라. 얼마나 많은 날을 빈손으로 돌아섰겠는가. 임채욱의 사진은 집념의 산물이다.
이번엔 북한산이다. 왜 북한산인가. 작가는 단호하다.
임채욱의 사진은 <블루마운틴>에서 보여준 예술성을 넘어 이제 산에 깃든 역사의 흔적을 좇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단계로 나아간다. 북한산 서쪽 자락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한옥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자체가 아니라 사진이 보이는 방식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사진전’이라기보다 ‘개인전’이라 해야 한다.
전시는 ‘길’을 주제로 전개된다. 1부는 조선의 군주가 걸은 왕의 길, 2부는 북한산 순수비를 찾아가는 추사의 길, 3부는 조선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의 길, 마지막 4부는 그 길을 하나하나 밟아가는 작가 임채욱의 길이다. 한옥 미술관의 공간적 한계를 무릅쓰고 전시장을 꾸며놓은 것을 보면 임채욱 작가가 얼마나 치밀한 설계자인지 알게 된다. 이 전시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3부 겸재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