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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22. 2024

신앙의 힘으로 빚어낸 불교회화의 꽃

석기자미술관(53) 영산(靈山)의 모임 – 진천 영수사 괘불


괘불(掛佛)의 사전적 의미는 ‘거는 부처’다. 사찰에서 야외 행사를 하면 의례의 중심이 되는 부처의 모습이 있어야 했다. 법당 안에 있는 불상을 밖으로 꺼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특별한 야외 행사 때는 부처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꺼내 높이 걸었다. 그래서 괘불은 거대하다. 불자들이 멀리서도 잘 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둘둘 말아서 보관하던 괘불을 꺼내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는 순간의 벅찬 감동. 불자들은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부처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영혼의 안녕과 안식을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박물관을 찾아간 그 날도 한참 동안 그림을 들여다보던 어느 불자는 가만히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기도를 올렸다. 혹여 방해될까 싶어 멀찍이 떨어져 그분이 기도를 다 마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괘불전이 열린다. 올해 주인공은 충북 진천군에 있는 사찰 영수사(靈水寺)에 소장된 보물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이다. 영산회는 석가모니가 인도의 영산(靈山)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가르침을 전한 모임을 뜻한다. 흔히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일컫는다. 불교의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였기에 그림으로 꾸준히 그려졌다.     


<영수사 괘불>은 몇 가지에서 특별하다. 첫째, 1653년(효종 4)에 제작된 이 괘불은 현재 전하는 괘불 117점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가치가 크다. 둘째, 높이 919cm에 너비 570.5c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에 그려진 인물만 140명으로, 현재 전하는 괘불 가운데 등장인물이 가장 많다. 셋째, 그동안 보아온 괘불과 달리 석가모니 앞에 앉아 가르침을 받는 사리불존자(舍利弗尊者)의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례다. 제자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경우다.     



괘불 맨 아래 네모난 천에 적힌 내용은 화기(畵記)라 해서 괘불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소요된 물품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영수사 괘불>을 그린 화승(畵僧)은 명옥(明玉), 소읍(少揖), 현욱(玄旭), 법능(法能) 네 명이고, 후원자는 모두 149명이다. 이 거대한 괘불을 조성하는 일이 얼마나 큰 사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괘불은 신앙의 힘이 빚어낸 불교회화의 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기면서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는 웬만한 전시장에서는 감히 펼쳐 보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괘불을 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불교회화실에 갈 때마다 이 공간을 조성한 분들의 안목에 감탄하게 된다. 독실한 불자조차도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든 괘불을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종교가 다르면 어떤가. 괘불에 담긴 그 정성,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터.    

 

전시 정보

제목영산(靈山)의 모임 – 진천 영수사 괘불

기간: 2024년 10월 13()까지

장소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 불교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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