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성장기의 경험이 성년이 된 이후의 삶을 알게 모르게 지배한다는 사실은 우리 각자의 경험으로도 익히 알 수 있죠. 인생의 어느 한순간도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겠지만, 성장기는 ‘배움’의 시기라는 점에서 다가올 내 삶의 행로를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간일 겁니다.
여기, 평범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낸 여성이 있습니다. 공교육은 아이들을 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정부의 음모라고 믿는 아버지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죠. 유일한 학교란 것이 교회 주일학교였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아이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타라. 그의 성장기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습니다.
타라네 가족의 삶은 지극히 상식적인 세계 안에서 양육되고 길든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까닭에 타라는 정확한 자기 생일을 몰랐죠. 덕분에 태어난 시기 언저리의 날짜를 해마다 직접 골랐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철저하게 분리합니다. 전화를 없애고, 운전면허 갱신도 포기하고, 차량 등록은 물론 보험 가입도 중단했죠. 대신 식량을 비축했습니다. 종말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이유로.
타라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피해망상과 종교적 원리주의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상황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죠. 열 살이 됐을 때 제대로 배운 것이 모스 부호뿐이었다는 사실이 타라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학교에 가고 싶어졌을 때도 그것이 ‘괴상한 생각’이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요.
이 가족의 특별한(?) 일상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다 읽고 나면 흥미로움을 넘어 치 떨리는 분노에다 강한 거부감까지 품게 되죠. 밀레니엄을 앞두고 집을 요새로 만든 뒤 세상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대목에서 한숨과 혐오감은 절정을 이룹니다. 타라네 가족의 삶은 결코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타라가 대학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고, 나는 아버지가 <주님의 약국>이라고 부르는 약초들에 대해 배워서 엄마로부터 그 일을 물려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의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 모든 주제에는 진실과 거짓말이 있을 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 학교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믿었던 그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은 대학이었습니다. 타라는 독학으로 대학 입학시험에 통과한 뒤 브리검 영 대학에 들어갑니다. 나폴레옹이 누군지, 장발장이 누군지 들어본 적도 없었던 열일곱 소녀는 그렇게 배움의 길에 첫발을 디디게 되죠.
선과 악으로 철저하게 양분된 세계에서 내 편이 아닌 자는 적으로 간주됩니다. 타라의 아버지가 굳건하게 쌓아 올린 신앙의 요새 안에서는 우리가 아니면 남이었고, 이쪽이 아니면 저쪽일 뿐이었죠. 타라의 공부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평생을 숲속에서 동물들과 어울려 지내던 늑대 소녀를 어느 날 문득 교실 의자에 턱 하니 앉혀놓은 광경이랄까요.
하지만 제대로 된 독서와 배움 속에서 타라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해서 의심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자기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쳐왔는지 차츰 의문을 던지게 되죠. 아버지로부터, 오빠로부터 가해진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온 자신의 과거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겁니다.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세계적인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가 장학금을 받는 역사학도가 되었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배움의 길을 이어나가면서 타라는 비로소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다고 고백합니다. 과거라는 짙고 무거운 그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순간, 진정 중요한 것은 ‘미래’뿐이었던 겁니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학교의 문턱에 발을 디딘 열일곱 소녀는 정확히 10년 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얻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타라의 그런 입지전적인 성공을 보장해준 대단하고 특별한 공부 비결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닙니다. 저자는 배움의 과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을 서서히 열어가는 과정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적어 나갑니다.
그 모든 기억에 맞설 수 있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지극히 평범하게 자라오고 살아온 저로서는 그 번민과 고통이 쉽사리 가늠되지 않습니다. 타라는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오빠에게 당당히 맞서죠. 이 책의 제목(원제 Educated)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배움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2020년 한 해 동안 또 어떤 책들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될지는 모르지만, 섣부름을 감수하고라도 저는 이 책을 올해 최고의 책 목록 꼭대기에 올려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