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는 자화상에서만 정채로움을 발했다. 가장 사랑하는 리베라를 그린 그림조차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노인이 질리지도 않고 자신의 병세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도 고통으로 가득찬 육체를 질리지도 않고 줄곧 그렸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개인의 문제가 보편성을 획득했는가 아닌가라는 차이가 있다. 그녀의 그림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달으면서도 보는 이에게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특이한 예이다.”
우리가 잘 안다고 믿는 프랑스 화가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이삭줍기>에 대해 저자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줍기>, 1857, 캔버스에 유채, 83.5×110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설득력 있는 묘사에 신앙이 더해져 그의 그림은 보편성을 얻었다. 밀레 자신은 가톨릭교도였지만, 가톨릭 국가가 아닌 나라에까지 복제품이 나돌고 방마다 벽에 걸린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의 갸륵함과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어떤 존재(그리스도이든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리라. (…) 결국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건 어떻건 좋은 것은 남는다.”
두 그림에 대한 설명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편성! 좋은 그림은 시대를 넘어, 국경도 훌쩍 뛰어넘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줍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자의 저 자신감 넘치는 표현이 솔직히 부럽습니다. 가령 이런 대목에서 저는 자기 문화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자부심을 읽어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 1851~1852, 캔버스에 유채, 76.2×111.8cm, 런던 테이트 국립 미술관
“밀레이의 「오필리어」는 영국에 유학했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직접 보고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소세키는 소설 『풀베개(草枕)』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죽을 장소로) 왜 그처럼 기분 나쁜 곳을 골랐는지 지금도 납득이 안 가지만, 아무래도 그래야 그림이 되는 것이다…… 밀레이는 밀레이, 나는 나니까, 나는 나의 흥미를 따라, 하나의 풍류로서 도자에몬(土左衛門)을 써 보고 싶다.”
인류의 걸작을 설명하는 글에서 자기 문화의 대가들을 서슴없이 끄집어낼 수 있는 저 자신감은 일본 문화의 든든한 뿌리 덕분에 가능한 것이죠. 이런 대목은 또 있습니다.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1879, 캔버스에 유채, 90×68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이 소설 『지고쿠헨(地獄變)』이 떠오른다. 헤이안 시대의 천재 화가가 수레에 사슬로 묶여 산 채로 불태워지며 고통받는 딸의 모습을, 아버지라는 걸 잊고 황홀하게 응시한 끝에 지옥 그림을 완성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화가는 바라던 대로 걸작을 완성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단단한 공부에서 나옵니다. 저자가 서슴없이 일본 소설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일본 문학을 많이 읽고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죠. 남의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남의 것을 인용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시대에 저자는 철저하게 자기 문화의 자장 안에서 읽고, 이해하고, 썼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힘입니다.
따라서 진정 무서운 것은 이 책이 소개하는 그림들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유산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문화 속에서 소화한 뒤 자기 시각으로 말할 줄 아는 일본의 저력입니다. 저자의 《무서운 그림》 시리즈는 NHK 교육 채널에서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영됐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한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이봄, 2012)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고요.
최근 국내에 출간된 《신(新) 무서운 그림》은 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셈입니다. 왜 또 비슷한 책을 냈을까 궁금했는데, 저자 후기에 이유를 적었더군요. 요약하면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너무 잘 팔리고, 독자들이 책을 더 내달라는 카드를 계속 보내왔을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도 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니, 못 이기는 척(?) 이 책을 냈다, 이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