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78) 오하은 박서보재단 개인전 + 라흰갤러리 3인전
오하은이라는 작가가 있다. 내게는 전혀 생소한 이름이었다. 우연히 박서보 재단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포스터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잡히는 게 없었다. 이제 갓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다. 기본적인 정보가 없으니 호기심이 더 커졌다. 무더위를 뚫고 전시장을 찾아갔다.
박서보재단 건물 1층에 있는 전시장은 아주 작다. 재단이 아트베이스 26SQM이란 이름으로 신진 작가의 전시를 후원하고자 비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전시 공간이다. 전시된 작품은 11점. 한쪽 벽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나 작가에 관한 이렇다 할 설명문이 없다. 박서보재단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상관없이 전시만 보러 오는 관람객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내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신진 작가라면 더.
오하은 작가는 주로 여성의 몸을 그린다. 대부분 확대된 몸의 특정 부분만 보여줄 뿐, 어느 그림에서도 몸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얼굴도 없다. 그러므로 여성의 정체는 미궁으로 남는다. 반면 남성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작가가 얼굴에 동그란 눈과 웃는 입을 그려 넣었다. 덕분에 장면이 주는 성적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몸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은 추문(醜聞)으로 남는다. 전시 제목이 그러하다. 너는 나를 욕망하고, 나는 나를 지워내고.
전시장에 걸린 그림 11점을 어떤 영화의 스틸컷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면 그림들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다. 개개의 그림이 그것 자체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퍼즐 맞추듯 11점을 한꺼번에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제법 그럴듯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이렇게 저렇게 그림을 보다 보니 문득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몸을 부분 확대하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이른다.
자료를 찾다가 같은 시기에 다른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 작가의 작품 몇 점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법이다. 무더위를 뚫고 그 전시장도 찾아갔다. 서울시 용산구의 용리단길에 있는 라흰갤러리. 전시장에 걸린 오하은의 작품은 10점이다. 박서보재단에서 본 것과는 다른 맥락의 작품도 있어서, 자기 회화의 길을 모색하는 작가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그림 속 여인의 손길만 섬세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그림 자체가 기본적으로 감각적이고 견고하다. 작가의 행보를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