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79) 김성룡 개인전 <오감도(烏瞰圖/五感圖), 그리오>
[작가노트]
섭지코지에는, ‘유자약전’의 소설가이면서 이상문학상 수상자였던 소설가 이제하 씨의 작은집 갤러리가 있었다. 이제 갤러리는 없어졌고 청문 너머 보이는 낡은 시멘트 벽에는 그림들을 걸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출입구 양철 간판에는 이제하 선생이 곡을 써서 가수 조영남 씨에게 주었던. 모란 동백. 노래 푯말만 해풍에 녹슬고 있었다.
나는 인간의 몸에 표범의 발톱을 숨긴 채, 광야의 어딘가를 떠돌다가 이 마을에 잠시 도착했었다.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서 있었으나 끝내 그 방향을 알 수가 없었고 생각을 멈추는 일초의 간극도 품을 수가 없었기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서 섭지코지의 검푸른 물결을 본다. 조용히 일렁이는 대양에는 몸이 반쯤은 물에 잠긴 익사자가 비닐봉지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오랜 시간 먹히고 뜯겨서 깊게 팬 그의 눈알에는 모래 게들이 집을 지었고, 허물어진 흉곽은 바닷물과 해파리떼의 안식처가 되었다.
인생을 낮술에 찌든 채 야생 아편꽃에 취한 듯 비틀대면서 걷다가 물속으로 들어간 마을의 늙은 어부를 아무도 찾을 수 없었으나. 이제야 물결 위로 떠다닌다. 누가 알겠는가. 궁륭의 하늘 위 태양 너머 별들이 빛나는 우주의 주홍빛 방사선 그물을 뒤집어쓴 채 꿈꾸듯 썩어가는 시신 위에 쏟아지는 소금의 열기로 무장한 광선의 계절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오랜 시간 쇠창살 우리 속에 감금된 채 거친 입김. 뜨거운 숨결 낮게 으르렁거리는 분노의 발걸음과 바닥을 긁어대는 발톱으로 무기력한 원을 그리다가 마침내 쇠창살을 부수고 나온 표범이 있었다. 나 또한 노랗게 빛나는 야생의 표정으로 그곳을 어색하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작가소개]
작가는 1980년대 사회와 역사를 회화로 다루다 이후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양상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정서의 균형(uncanny balance of emotion)을 화면에 옮기기 시작했다. 김성룡 작가는 국내외 비평가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하나이며 다수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김성룡 작가는 문사철 시서화가 하나라는 사실을 체검한 이후 많은 사색과 독서, 자연에서 얻은 통찰을 작품에 담아왔다. 현재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회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국내외 전시를 모색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전시 리플렛이 알려주는 정보다.
화가의 뜻에 따라 전시장에는 오직 그림만 걸렸다. 제목도, 재료도, 크기도, 제작연도도 알 수 없다. 오롯이 그림 자체에 집중해달라는 것.
거칠고 투박한, 날것의 감성을 고스란히 투영한 그림 앞에 선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 저 얼굴들은 곧 화가 자신이 투영된 존재들.
긴 방황의 여정에서 맞닥뜨린 여러 개의 자아.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에너지가 캔버스 위로 분출한다. 매혹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