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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24. 2020

하숙집과 정육점이 공존했던 조선의 대학가 ‘반촌’

특별전 <성균관과 반촌>(서울역사박물관, ~2020.3.1.)

성균관(成均館)은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이었죠. 지금도 그 이름을 계승한 대학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학교 앞은 지금도 대학로로 불리고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전통은 조선시대에 가 닿습니다. 우선 성균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 곳이 필요했을 겁니다. 교통이 대단히 불편했던 시대였으니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야 했겠죠. 성균관에 들어가려는 이들이 머물 공간도 필요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고시촌이 있어야 했던 겁니다.

     

《태학계첩》에 수록된 <반궁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4호)의 부분


이런 필요가 만든 동네가 바로 반촌(泮村)입니다.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文廟)와 성균관을 보살피는 일에 종사한 이들은 성균관이라는 공공기관에 소속된 공노비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반인(泮人)이라 불렀습니다. 반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 바로 반촌, 지금의 대학로 일대였습니다. 《태학계첩 太學稧帖》이란 문헌에 실려 있는 <반궁도 泮宮圖>라는 지도를 보면, 성균관 앞에 개천이 흐르고 건너편으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이죠. 이곳이 바로 반촌입니다.     


반촌은 아주 재미있는 곳입니다. 앞에서도 소개했듯 반인들의 거주지였던 이곳은 과거시험을 보러 지방에서 올라온 유생이나 관료가 되어 한양에 온 지방의 양반들이 머무는 하숙촌이었습니다. 반인들이 직접 하숙을 치면서 유생이나 양반네들이 먹고, 자고 하는 온갖 일들을 보살폈던 거죠. 게다가 이곳은 성균관 유생들에겐 둘도 없는 아지트이기도 했습니다. 엄격한 학교생활에 갑갑함을 느낄 때마다 반촌을 찾아 놀며, 쉬며, 즐겼을 그 시절 유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반촌은 치외법권 지대였습니다. 문묘라는 신성한 영역에 부여된 특수한 예외가 반촌에도 동일하게 적용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범인이 반촌 안으로 도망치면 요즘 말로 제아무리 경찰이나 검찰도 어쩌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 문신 이정섭(李廷燮, 1688~1744)의 글 <귀천유고>에 이런 내용이 보입니다.     


한성부의 금리와 사령들이 배오개 근처에서 쇠고기를 압수한 후에 쇠고기를 도축한 집을 찾고자 하였는데 반촌의 출입이 편치 않으므로 관복이 아닌 남루한 옷을 입고 때를 엿보았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조경의 《하서집 荷棲集》에 실린 반촌 관련 상소문


다른 옷으로 위장하지 않고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알려주는 대목이죠. 조선 후기의 학자로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조경(趙璥, 1727~1787)의 시문집 《하서집 荷棲集》에는 당시 반촌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린 형조의 하급 관리들에게 죄를 묻고 성균관 선비들에게 사죄하라고 윗선에 요청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요청이 뭉개지자 조경은 사표를 냅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반촌에 국가가 공식 인정한 푸줏간, 즉 정육점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변변한 농기구가 없던 시절에 소는 농사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죠. 이 두 가지가 자꾸 부딪쳐서 소가 갈수록 줄자 정부가 급기야 소 도축 금지령을 내리고 불법 소 도축을 엄격하게 단속합니다. 처벌 수위도 엄청났습니다. 도축을 지시한 사람은 곤장 100대를 쳤고, 도축한 사람은 노비로 만들어 외딴 섬에 영원히 가둔다는 법령까지 만들었죠.     


그런데 이 금지령이 천년만년 지속할 수는 없었을 터. 그래서 만들어진 대안이 바로 특정 지역에 사는 특정인들에게 제한적으로 소를 도축해서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도축 면허를 준 셈이죠. 그렇다면 한양에서 소 잡는 동네가 어디였을까. 바로 반촌이었습니다. 문묘 제사에 쓸 소를 도축한 곳이 바로 반촌이었으니까요. 이런 필요에 따라 조선 후기에 이르면 반촌에 정부의 허가를 받은 푸줏간 20여 곳이 들어섭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곳을 현방(懸房)이라 불렀습니다.     


현방 주인이었던 안기양의 일기장. 거래 내역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대학가 하숙촌과 푸줏간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죠. 반촌에 얽힌 이야기들은 실로 무궁무진합니다. 이번 전시는 그런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죠. 이렇게 공간에 깃든 역사를 되밟아나가면 결국 그 안에 사람이 있고, 삶이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전시 정보

제목성균관과 반촌

기간: 2020년 3월 1일까지

장소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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