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01) 유희영 <생동하는 색의 대칭>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색면추상’ 하면 대번 마크 로스코라는 화가의 이름을 떠올릴 게다. ‘색면추상’이라는 양식과 동의어나 다름없게 된 로스코의 영향력은 실로 압도적이어서, 이후에 색면추상을 들고 나타난 화가들은 죄다 로스코라는 한없이 높은 기준점과 비교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그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우리나라에서 색면추상을 거론할 때 대표적으로 꼽히는 화가가 바로 유희영이다. 1940년 충남 한산 태생의 유희영은 서울대 미대 시절인 1961년에 이미 국전, 즉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문공부장관상과 대통령상까지 휩쓸며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1979년 국전 추천작가상을 받고 국전 심사위원과 초대작가를 지냈다. 실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유희영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건 서울시립미술관장 경력이다. 유희영은 2007년부터 5년 동안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매스컴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2000년대 후반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좋은 전시를 꽤 많이 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2008년 퐁피두 소장품전, 2009년 앤디 워홀 전, 2010년 샤갈 전 등이다. 전시 때마다 유희영은 미술관을 대표하는 관장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잘 나갈 때였다.
그 덕분에 유희영은 홍라희, 박명자에 이어 2009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인물 여론조사에서 3위에 뽑히는 영광도 누렸다. 나도 딱 한 차례2010년 12월 샤갈 전 당시 유희영 관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유희영은 이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2021년에는 회장으로 선출돼 예술원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화가 유희영은 어떨까. KBS 뉴스 아카이브만 기준으로 보면, 유희영이 화가 자격으로 한 인터뷰는 단 하나도 없다.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신분으로 한 인터뷰가 대부분이다. 미술행정가로서의 경력과 화가의 예술은 전혀 별개다.
유희영이 색면추상을 본격적으로 작업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유희영은 한 가지 색을 여러 차례 겹쳐 바르는 방식으로 색채의 깊이와 밀도를 화면에 만들어낸다. 여기에 수직과 수평으로 균형을 이루는 엄격한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기하학적 추상이 더해진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예술원 전에도 유희영의 작품이 걸렸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화가를 대표하는 색은 빨강이었다. 유희영의 2000년 이후 작품 30점이 걸렸는데, 빨강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구도는 자연스럽게 ‘창’을 떠올리게 한다. 대부분 수직과 수평 구도를 취했고, 사선 구도로 변화를 준 것도 더러 보인다. 전시 제목 <생동하는 색의 대칭>은 ‘색채’와 ‘대칭’의 조화를 통해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미학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온 화가의 조형적 의지를 상징한다고.
그림이 사진빨을 잘 받는다.
감상은 각자의 몫이다.
■전시 정보
제목: 유희영 <생동하는 색의 대칭>
기간: 2024년 10월 20일(일)까지
장소: 현대화랑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
문의: 02-2287-3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