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02) 서울옥션 제180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서울옥션이 제180회 미술품 경매를 2024년 10월 22일(화) 오후 4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연다. 천경자, 백남준, 이중섭 등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의 작품과 더불어 최근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이배 등의 작품이 출품된다. 이외에도 희소성이 큰 고미술품, 그리고 시계, 핸드백과 같은 럭셔리 품목도 경매에 오른다. 출품작은 총 129랏(Lot), 낮은 추정가 총액 약 63억 원이다.
경매의 하이라이트 작품은 천경자의 1977년 작 <여인의 초상>이다.
“긴 목, 굳게 닫은 입술, 창백한 피부색의 화면 속 여인은 우수에 찬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여인을 감싸듯 화면 전반을 아우르는 보랏빛 색조는 중후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머리에 얹은 화관과 화관을 향해 날아든 나비들이 높은 채도의 색감으로 그려져 화려함을 더함과 동시에 대대조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천경자의 여인상은 단순한 초상화의 의미를 넘어 개인적인 경험들을 집약시킨 것이다. 작가는 ‘외롭고 원통하고 고달플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여성상의 표현과 함께 ‘강렬하고 현실에 보기 드문, 영원한 느낌’을 가진 여인을 그린다고 말했다. 화면 속 여인은 작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지친 내면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초월적인 여인상의 표현으로 자리한다.”
“램프를 손에 쥔 채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포즈와 얽혀 있는 케이블, 긴 고깔 모자가 돋보이는 <로봇 피에르>는 로봇 시리즈 중 하나로 높이 2m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다. 백남준은 60년대 중반부터 로봇과 관련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는데 출품작은 한스 하케와 함께 독일관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했던 1993년 다음해이자, 미국 순회전을 시작하며 TV로봇이었던 <해커 뉴비> 등을 선보였던 1994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영상이 재생되는 화면은 로봇 구조물의 주요한 신체 부위에서 재생되고 있는데 특히 얼굴과 가슴의 모니터가 두드러진다. 이는 현대인의 시각과 감정을 기술이 어떻게 대체하고 있는지를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출품작을 통해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백남준의 실험적인 시도와 비디오 아트를 하나의 매개체이자 예술의 모든 가능성을 담아낸다고 여기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셋째 아들 태현에게 보낸 출품작은 아이들이 끈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 다섯 명의 아이들의 신체 일부가 끈으로 연결되어 경쾌한 구성을 이루며 천진난만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아이들은 발가벗은 채로 한 아이의 다리를 다른 아이가 잡고 있거나 태평하게 드러누운 채 끈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있다. 아이들을 연결하고 있는 끈은 시작과 끝이 없이 얽혀 있어 순환의 구조를 나타내며, 이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인연을 상징하고 강한 결속을 의미하는 중요한 소재로 해석된다.”
“제주도에 위치한 이중섭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둘째 아들 태성에게 보낸 것과는 도상의 배치가 유사하나 채색의 밀도에서 차이가 있다. 아이들은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채색되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끈은 노란색으로 칠해서 시각적 대비를 만들어낸다. 이에 반해 태현에게 보낸 작품은 바탕에 회색 테두리를 칠해 아이들의 형태와 군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 한국 근현대 화가의 작품으로는 남관의 1972년 작 <기념탑 위의 읽을 수 없는 문자>, 박영선의 1975년 작 <무제>, 김형근의 1987년 작 <정물>, 오윤의 1985년 작 <춘무인 추무의>와 <앵적가>, 김창열의 1991년 작 <회귀>, 강요배의 2007년 작 <가을연꽃> 등이 선보인다. 이 가운데 김창열의 작품은 지금까지 흔히 보아온 작품들과 색감이나 제작 방식이 달라 주목된다.
출품작 가운데 내가 가장 주목한 건 변시지의 작품 <해녀>다.
변시지 특유의 황톳빛 바탕에 하늘에 뜬 해와 먼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몸짓을 한 인물 6명이 검정 물감으로 단순하게 그려졌다. 사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어떤 그림인가 의아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해녀>라는 제목이 붙었다. 세상에나, 제주 해녀 그림을 이런 식으로 그린 화가가 있었던가.
그동안 변시지의 작품에 끌리지 않았는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