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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11. 2024

안중근 첫 신문 기록 담긴 일본인 회고록 경매에 나왔다

석기자미술관(128) 서울옥션 제181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Lot. 120-1, 오노 모리에, [회고록], ink on paper, 17.9×25.4cm (14pages, 1910.3.)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러시아군에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다음 날 일본 영사관으로 인도돼 10월 30일 첫 신문을 받는다. 이때 영사관보로 재직한 일본인 오노 모리에(大野守衛, 1879~1956)가 작성한 회고록에 안중근 의사 심문 기록이 담겼다. 오노가 이 기록을 남긴 시점은 안 의사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10년 3월이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노는 러시아 관헌으로부터 안중근 의사를 인계받아 총영사관 지하구치소에 가둔 뒤, 안 의사의 옷가지를 살펴보고 통역관을 불러 신문하는 등 반나절 넘게 취조했지만, 아무 단서도 얻지 못한다. 오노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안 의사에게 담배를 건네자, 안 의사가 처음으로 ‘생큐’라는 짤막한 답과 함께 담배를 손에 쥔다. 이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동기를 묻자 안 의사는 당당하게 ‘한국을 멸망시킨 역적이기 때문’이라 답한다. 10월 30일, 오노는 안중근을 뤼순 관동도독부 소속 미조부치 다카오 검사에게 인계한 뒤 안 의사를 비롯한 한국인 10여 명이 뤼순고등법원으로 압송됐다는 내용으로 회고록을 마무리한다.     


오노의 방대한 회고록 가운데 안 의사와 관련한 원고지 14장 분량이 따로 분리돼 일본의 온라인 경매에 나온 것을 어느 한국인이 낙찰받아 서울옥션 경매를 통해 공개했다. 거사 후 일본 영사관으로 인도돼 첫 신문을 받기까지 안 의사와 관련한 사흘간의 흔적이 담긴 귀중한 기록을 국내로 환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인의 회고록과 더불어 유리건판 8장, 사진 7장이 하나로 묶여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 일괄>로 경매에 나왔다.     


Lot. 120-2, [안중근 의사 관련 인화사진], 17.7×25cm (6pages)

  

Lot. 120-3, [안중근 의사 관련 유리건판], 6.4×8.8cm (8pcs)



네거티브 형식의 유리건판에는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 의거 당시 하얼빈역 풍경과 일본 고관들의 모습,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의 것으로 보이는 글과 낙관, 산악 구조견의 모습 등이 담겼다. 안 의사의 유리건판과 사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것으로, 사진 설명에 한자로 ‘저격수범인 안중근(한인)’이라고 적혀 있다.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는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경매 시작가는 10억 원.     


Lot. 120, 박경리, [토지 제5부 육필 원고 48권 일괄], ink on paper, 26×18cm

 


이번 경매에서 또하나 주목되는 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육필 원고 가운데 마지막 부인 제5부 육필 원고다. 분량은 1권부터 48권까지 모두 48권. 서울옥션은 “마치 한 번에 써 내려간 듯 간결한 서체는 흔들림이 없고, 새롭게 권이 시작하는 장마다 작가가 자기 이름을 남기며 서두를 시작한다. 중간중간 오타를 고치고 표현을 더 전달력 있게 수정해놓은 부분도 출판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육필 원고만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육필 원고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만세우리나라 만세아아 독립만세사람들아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 번쩍 쳐들며 눈을 흘리다가는

소리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Lot. 114, 한용운, [님의 침묵], printed on paper, 13.1×19.2cm, 1926.5.20, 회동서관, 초판본
Lot. 115, 김소월, [진달래꽃], printed on paper, 10.5×15cm, 1925.12.26, 매문사, 초판본,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70-4호

   

Lot. 116, 백석, [사슴], printed on paper, 16.5×21cm, 1936.1.20, 자체출판, 초판본, 100부 한정판


   

이뿐만 아니라 1935년 시문학사가 펴낸 <정지용시집> 초판본, 1926년 회동서관에서 발간한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 근대 문학작품 가운데 최초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소월의 1925년 매문사 초판본 시집 <진달래꽃>, 1936년 시인 백석이 100부 한정판으로 직접 펴낸 시집 <사슴>의 초판본, 1935년 시문학사에서 발간한 김영랑의 시집 <영랑시집> 초판본, 1948년 정음사가 펴낸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1947년 박물출판사에서 발간한 박태원 소설 <천변풍경> 재판본이 한꺼번에 경매에 등장해 비상한 관심을 끈다.     


Lot. 43, 조지 콘도, [The Screaming Priest], oil on canvas, 73.8×60.6cm, 2004



근현대 미술품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미국의 현대미술가 조지 콘도(George Condo, 1957~)의 2004년 작 <고함치는 성직자 The Screaming Priest>. 조지 콘도는 유럽 전통 화법과 미국 현대 예술을 접목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콘도는 기존의 표현 방식을 뛰어넘어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 철학을 추구했고, 이를 통해 ‘Artificial Realism’이라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고안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느끼는 추상적인 감정을 고전적 구도와 기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표작인 초상화 시리즈에서는 마치 조각난 신체를 끼워 맞춘 듯 그로테스크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인물의 외형뿐 아니라 감정과 내면까지 포착해 하나의 화면에 담아내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렇게 현대인의 다면적인 모습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작가는 스스로 ‘심리적 입체주의 Psychological Realism’라 불렀다.     

이번 경매 출품작은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 《George Condo: Mental States》에서  선보인 것으로, 인물의 상반신이 정면에 위치한 고전적 구도와 명암을 따르면서도 도형화된 인물의 형태를 통해 비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자비와 신실함의 상징인 성직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강렬한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복합적인 면모를 탐구하려는 작가의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정가 6억 원에서 9억 원.     


Lot. 75, 니콜라스 파티, [Portrait with a Moustache], offset lithograph with screenprint on wove paper



이 밖에 눈에 띄는 해외 작가의 작품으로는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 1980~)의 2013년 에디션 작품 <Portrait with a Moustache>가 있다. 50개 에디션 가운데 4번째 작품으로, 뒷면에 작가의 서명과 날짜, 에디션 번호가 적혀 있다. 2022년 9월 14일 소더비 런던 경매에 출품된 이력이 있다. 호암미술관에서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 경매시장에도 꾸준히 작품이 나오는 상황. 추정가는 8백만 원에서 2천만 원.     

Lot. 37, 이중섭, [아이들], incising and oil paint on metal foil on paper, 10×15.4cm



국내 작가의 작품 가운데선 이중섭의 은지화 한 점이 주목된다. 담뱃값 속지에 뾰족한 도구로 어린이 8명을 그려 넣었다. 서로 신뢰하고 허물없이 의지하는 돈독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구성으로, 아이들이 모두 다른 자세를 하고 있어 각각의 모습이 독립적이면서도 살을 맞대거나 서로를 만지며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체를 순차적으로 묘사해 공간감을 구축했고, 다양한 표정에 손과 발동작 표현을 강조해 생동감을 더했다. 추정가는 6천만 원에서 1억 원.     


이 밖에 근현대 작품으로는 인물화로 널리 알려진 김인승 화백의 1988년 작 <백장미>, 임직순의 1980년 작 <화실과 모델>, 제작연도가 확인되지 않는 권옥연의 작품 <여인>, 천경자 화백의 1981년 작 <타오스 푸에블로>, 이숙자 화백의 보리밭 두 점, 이성자 화백의 1976년 작 <Le Soleil Bleu>, 남관 작가의 1972년 작 <장미빛 투영>, 변시지 화백의 작품 두 점, 강요배 작가의 작품 석 점을 눈여겨봤다. 고미술 부문에선 겸재 정선의 손자인 손암 정황(鄭榥, 1735~?)의 <산수도>가 주목된다.     


Lot. 59, 김인승, [백장미], oil on canvas, 52.3×71.8cm, 1988
Lot. 54, 임직순, [화실과 모델], oil on canvas, 72.5×61cm, 1980
Lot. 59, 권옥연, [여인], oil on canvas, 35×27.5cm
Lot. 56, 천경자, [타오스 푸에블로], color on paper, 27×24cm, 1981
Lot. 22, 이숙자, [황맥], stone color on Korean paper, 79.8×99.5cm, 2001
Lot. 66, 이성자, [Le Soleil Bleu], oil and acrylic on canvas, 79×79cm, 1976

  

Lot. 65, 남관, [장미빛 투영], oil on canvas, 73×60cm, 1972
Lot. 14, 변시지, [제주 아낙네], oil on canvas, 27.2×14.7cm
Lot. 15, 강요배, [풍경], acrylic on canvas, 53×72.7cm, 2004

  

Lot. 105, 정황, [산수도], ink on paper, 26.2×35.3cm



경매 및 전시 정보

제목서울옥션 <181회 미술품 경매>

경매: 2024년 12월 17(오후 4

전시: 2024년 12월 17()까지

장소서울옥션 강남센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64)

문의: 02-39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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