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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12. 2024

북한에서 돌아온 해강 김규진의 그림 <세한오우도>

석기자미술관(129) 이규일 <한국미술의 명암>(시공사, 1997)

청강 김영기 화백 (사진출처: 티스토리 ‘정종배 시인의 방’)



한국화가 청강 김영기(1919~2003) 화백은 1932년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중국 유학길에 올라 중국 현대 미술의 거장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김영기 화백의 아버지는 근대 미술사의 거목 해강 김규진(1868~1933). 해강은 중국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청년 해강’이란 뜻의 청강(靑岡)이란 호(號)를 지어주고 치바이스에게 편지를 써줬다. 열여덟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서화를 익히며 쌓은 인연 덕분이었다. 청강은 당대의 명인 치바이스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인 화가로 남게 된다.     


1991년 청강 김영기 화백의 팔순을 기념하는 전시 《팔순전》이 5월 23일부터 6월 15일까지 서울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63에서 열렸다. 전시 기간에 아주 특별한 작품이 공개돼 당시에 큰 화제를 뿌렸다. 청강의 부친인 해강 김규진이 1913년에 그린 그림 한 점이 북한에서 브라질 교포 그림 상인을 통해 입수돼 1991년 6월 1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것. 이 흥미로운 일화가 미술기자 이규일의 책 <한국미술의 명암>에 실려 있다. 도판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해강 김규진의 <세한오우도>



북한에서 반입처음 공개된 해강의 <세한오우도(歲寒五友圖)>. 330×130cm. 이 그림은 북화와 남화의 절충 화법으로 1913년 9월 16일에 완성한 해강의 역작왕대 매화 영지 백학 괴석을 그려 청강이 TV와 신문에 첫선을 보이면서 <세한오우도>라는 화제를 붙였다.     


1991년 6월 4일 KBS 9시 뉴스에 방송된 기사 내용을 보면, 해강이 순종 황제의 명을 받아 1920년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벽화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해강이 1923년에 그린 <묵석죽도>와 더불어 <세한오우도>까지 석 점이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특히 <세한오우도>에 대해선 “이 그림은 해강 화백이 1913년에 그린 대형 화조도로 지난 3월 가야화랑 대표 김시웅 씨가 북한에 있던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구입한 작품으로 아들 청강이 <세한오우도> 이름을 붙였습니다.”라고 전했다.     



해강 김규진 화백 작품 70년만에 공개 (KBS 뉴스9 1991.06.0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04983     


  

미술기자 이규일(1939~2007) 선생이 오랜 미술 취재 경험을 토대로 ‘화단야사’라는 표제를 붙여 펴낸 <뒤집어 본 한국미술>(시공사, 1993)과 <한국미술의 명암>(시공사, 1997) 두 권은 한국미술사를 살찌워줄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보물단지 같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1권의 내용이 훨씬 더 흥미진진했고, 2권은 자료집의 성격이 조금 더 두드러져 보였다. 선배 미술기자가 남긴 두 책을 통해 지금껏 몰랐던 미술계의 숨은 뒷이야기들을 많이 알았다. 이렇게 또 배운다.     


덧붙여 KBS 뉴스 자료를 뒤적여보면 한국 미술사와 관련해 귀한 내용이 참으로 많다. 김영기 화백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가 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 그렇게 숨은 보석같은 자료를 찾아내 널리 알리는 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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