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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06. 2020

가야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가야본성: 칼과 현>(~2020년 3월 1일)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멀면 멀수록 형태를 갖춘 유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죠. 가야는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과거입니다. 김수로왕이 가야를 건국한 이야기는 신화로 남아 전할 뿐입니다. 가야의 유물이라는 것도 무덤 안에 오랜 세월 갇혀 있은 덕분에 그나마 훼손되지 않은 토기와 무기류가 대부분이죠.     


가야를 전시로 보여주는 일은 그래서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보여줄 것이 마땅치 않죠. 무덤에서 나온 토기가 전시품의 절반을 넘는다면 실패가 불 보듯 뻔합니다. 관람객인 제가 봐도 그런 한계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데, 전시를 준비한 박물관 관계자들의 ‘고충’은 얼마나 컸을까요.     


<파사석탑>, 김해시 구산동 수로왕비릉, 김해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7호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아들이는 유물은 <파사석탑>이라고 불리는 돌덩어리들입니다. 수로왕의 부인이 될 운명을 안고 머나먼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온 허황옥이 거센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배에 싣고 왔다고 하죠. 설화와 결부된 물건이니 그것이 진짜 탑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어쨌든 보여줄 것이 마땅치 않은 박물관 측은 이 물건을 과감하게 떼어와 전시장 안에 들여놓았습니다.     



고심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가야 유물의 대부분이라도 해도 좋을 토기들은 육각형 뼈대를 세워 만든 유리 장식장 안에 한꺼번에 몰아넣었습니다. 토기를 벌여 놓는 대신 쌓아 올린 겁니다. 나름대로 묘안을 짜낸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크고 둥근 항아리와 갖가지 동물의 모습이 들어간 토기들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좌) <금관>(삼성미술관 리움, 국보 제138호) (우) <말 탄 무사모양 뿔잔>(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75호)



가야의 유물 가운데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은 극히 드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값나가는 것들은 이미 무덤에서 도굴됐을 테니, 그러고도 남은 것 중에 국보 보물에 값하는 물건은 극히 희귀할 수밖에요. 게다가 그 시대가 워낙 멀어 어떤 유물이든 온전하게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무심한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가장 손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국보나 보물 위주의 귀한 물건들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지만 가야 전시는 현실적으로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금관과 함께 전시장에 나온 국보로는 <말 탄 무사모양 뿔잔>이 있습니다. 5~6세기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된 물건임에도 보존상태는 물론 조형미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이런 귀한 유물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얻게 됩니다.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겠다는 강박을 버리고 교육적 측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무덤을 재현하거나 영상 콘텐츠를 이용한 설치 공간도 여기저기 보이고요. 하지만 예상대로 가야에 관한 관심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야의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전시는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옛날엔 저랬구나, 끄덕끄덕, 거기서 끝이죠.     



좋은 전시를 보면 어떤 ‘감’이 옵니다. 그 ‘감’을 더 구체적으로 집어 이야기하면 ‘영감’일 겁니다. 과거의 유물과거에 박제된 채로 머물러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면, 그 유물에 애써 눈길을 줄 이유가 없죠.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가야 시기를 배경으로 한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를 읽어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박물관도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 붙어 있는 모든 글을 김훈 작가더러 사전에 검토하게 한 걸 보면 말이죠. 역사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결국 ‘오늘의 상상력’이 아닌가 합니다.


전시 정보

제목: 가야본성 칼과 현

기간: 202031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품: 기마인물형뿔잔(국보 제275) 2,600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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