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20) 이상국 개인전 《Unfolding Nature》
나는 자유롭기 위해 그린다. 그림 그 자체는 자유(自由)다. 자유는 인습적이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현대(現代)라든가 전위(前衛)라는 혼돈에 빠지기도 했었다. 인습과 혼돈, 그것은 내가 아니었고 물론 자유도 아니었다.
현실로 돌아가 오늘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삶의 부분들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에, 어느 때에 서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것이 진실로서 표현되었을 때 희열을 느꼈다. 다정한 이웃, 성실한 이웃, 슬픔을 알고 있는 이웃, 삶의 보람을 느끼는 이웃,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이웃과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자유를 위해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인습, 혼돈이 아닌 자유. 허재비, 공장지대, 판자집, 산동네, 그 사람, 겨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러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한 나는 그림을 그릴 것이고, 거기에 온통 벌거숭이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가끔 외로움에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가을해 저녁놀이 마지막 휘황함을 발할 때, 높은 빌딩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그 햇빛 사이로 어둠에 서서히 먹혀들어 가는 회색 벽, 그러한 것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 국민학생 때였던가, 조회대 앞에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하얀 입김을 뿜으며 애국가와 교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매일매일 보았던 산동네, 천막 교실에서의 2부제 수업.
그러고도 20년이 지난 후 두 번째 근무했던 학교, 2층 교실에서 수업하다 내려다보았던 해방촌 산동네가 그때와 똑같은 감동으로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4·19때였던가, 우리 동네 뒷동산에 한 떼의 철거민들이 몰려와 밤에는 집을 짓고 낮에는 경찰이 철거반을 동원하여 헐어대는, 짓고 헐고 옥신각신 모양을 보면서 삶의 억척스러움에 울음을 삼켜 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로 되돌아와, 나 자신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나 자신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힘든 일이었으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다. 정말 나는 나 자신을 온통 벌거숭이로 만들어 표현하고 싶었고, 울고 싶도록 깊숙이 파고드는 외로움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오늘을 사는 다정한 이웃과 성실한 이웃, 외로움을 아는 이웃,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과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거기에는 동양화니, 서양화니, 현대니, 전위니 하는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데에서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공통된 언어를,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 억압도 제약도 규범도 없는 자유, 그 자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허재비, 홍동지, 사람, 그 사람, 겨울사람, 공장지대, 마을, 산동네들, 어렸을 때 조회대 앞에서 매일매일 보면서 느꼈던 산동네와 같은 감동을 가지고 그리고 싶었다. 실로 다산(茶山)이 이야기한대로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을 시대를 보는 안목과 무엇을 선택하여 표현할 것인가. 또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어떠한 시각으로 파악하고 개괄하여 표현할 것인가. 그것을 개괄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을 표현한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그림 그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처럼 가치관, 시대적 미감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그것이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나는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 겸재(謙齋), 단원(檀園), 혜원(惠園)을 비롯한 실학파 화가와 다산(茶山)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들은 그때까지 그들의 가슴을 짓눌렀던 중화주의(中華主義)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반항함으로써 비아(非我)가 아닌 아(我)의 입장에서 현실을 파악하려 했고, 새로운 문물을 주체적으로 수용했으며, 버림받고 소외되었던 서민의 생활, 여성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그의 애환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성 회복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와 인습적인 제작 태도를 포기하고,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개괄하여 표현함으로써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관, 시대적인 미감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 오늘을 사는 우리 현실의 표상은 무엇일까. 무엇을 개괄하여 표현할 것인가. 산동네인가, 겨울 공화국인가, 종철인가, 한열인가, 그것을 어떤 조형언어로 표현해야 할까.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 광고나 선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글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고 했던 60년대 초, 그리고 70년대 중반까지 그런 생각을 쭉 해왔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림을 그리는 것 빼놓고 달리 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머리가 영민해서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운동을 잘하지도 못했다. 놀이에서도 항상 깍두기 신세였다. 사교성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 살아온 모든 것의 거의 전부였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모아 내놓으면서, ‘산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명제에 생각이 멈추면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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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상국 10주기 기념전 <그림은 자유>에 이어 이번엔 가나아트 한남에서 이상국 개인전이 열린다. 그림을 보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성정이 보인다고 했던가. 단정하고 맑고 차분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그림들을 보면서 화가 또한 그런 분이었으리라 짐작한다. 2013년에 발간된 이상국 작품집에서 화가의 글을 옮겨왔다.
또 하나. 이상국은 거의 모든 그림에 단기(檀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