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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05. 2020

그래도 눈부신 봄 햇살을 기다리며…

김덕기 <눈부신 햇살 아래서>(포스코미술관, ~2020.3.10.)

코로나19 때문에 이래저래 지치고 위축된 일상입니다. 한바탕 소란에 계절 바뀐 줄도 모르고 살았더군요. 봄입니다. 아직 공기가 차지만 봄은 봄이죠. 설레는 마음이고 싶습니다. 밖으로 달려 나가 햇살 듬뿍 받아보고 싶습니다. 꽃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요. 나풀나풀 나비의 날갯짓 따라 춤도 춰보렵니다. 가만히 눈 감고 새들의 지저귐에도 귀 기울여 봤으면…. 뭇 생명이 일제히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저마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눈부신 계절. 해마다 봄은 오는 법이지만, 오는 봄들은 매번 새롭습니다.     


<생폴드방스 – 눈부신 햇살 아래서>,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53×73cm



봄을 봄답게 해주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꽃입니다. 김덕기 작가의 그림은 그것 자체로 봄입니다. 일부러 봄을 그리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는 건 화가의 마음이 봄을 닮아서일까. 화가는 틀림없이 봄을 무척 좋아할 겁니다. 봄이면 전시장에 그림을 펼쳐놓습니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오로지 봄의 등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듯이 말이죠. 올해도 김덕기의 그림은 전시장을 봄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김덕기 작가를 알아 온 지도 어느덧 4년 가까이 됐군요. 최근 몇 년 동안 작가는 유럽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오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신작에 동화 속 마을 같은 풍경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볼프강 호수와 독일의 퓌센, 체코 프라하 등 세계 각지에서 만난 이국적인 풍경들이 작가 특유의 화사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언젠가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왈츠를 줄곧 들었다고 했습니다. 밝고 경쾌한 화폭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 속에서 어떤 ‘리듬’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플로리다 키웨스트 – 아름다운 해돋이(황금빛 아침)>,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80.3×116.8cm

  


김덕기 작가 그림에 절대 빠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김덕기 하면 으레 화사한 꽃을 연상하게 되지만, 꽃 없는 그림은 있어도 가족 없는 그림은 없죠. 그런데 최근 작품을 보면 변화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플로리다 키웨스트 앞바다 풍경을 그린 이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 뜨거운 태양이 솟아오르는 이 장엄한 광경 앞에서 그 누가 겸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그림의 주인공은 해입니다. 봄볕이라고 해도 좋겠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을 뜨겁게 데우는 저 태양이 가리키는 계절은 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김덕기 작가를 색채의 마술사, 행복을 전하는 작가로 부르는 모양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2000, 한지에 수채물감과 먹, 69×87cm



이번 전시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해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기별 주요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작가의 초창기 그림들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첫 작업은 먹에서 시작했죠. 꾸준히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서정성을 가다듬는 과정을 거쳐 작가는 자기만의 화풍을 확립했습니다. 김덕기의 그림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열쇳말은 가족, 사랑,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되죠.      


사실 김덕기 작가의 그림은 언뜻 보면 쉽게 그려졌을 거란 인상을 줍니다. 형형색색 동심 가득한 그림이 뭐 그리 특별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전시기획자가 지적했듯이, 다양한 자연의 대상물들을 그만큼이나 다양한 색깔로 표현하면서 색채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화를 유지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치밀한 계산과 정교한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죠.     


<뜰안의 풍경>,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91×116.8cm



그건 앞에서 언급한 '리듬'과도 연결됩니다. 그림에서 어떤 '리듬감'이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여러 색을 조화롭게 구사했다는 뜻이겠지요. 특히 김덕기의 작품에서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사용됩니다. 수많은 '색점'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어울림, 그리고 그 속에서 잔잔하게 번져나가는 변화의 파동이야말로 작가만의 고유한 표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림은 화가를 닮는 법이죠. 제가 만난 김덕기 작가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고 순수합니다. 그런 마음의 결이 담긴 그림은 우리를 한없이 따뜻하게 해주죠. 코로나19로 인해 더 고단하고 팍팍해진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결국 ‘가족’일 겁니다. 작가들도 무척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죠. 당연히 삶은 계속돼야 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 세상에 내보여야 합니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상조차 몹시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들이죠. 김덕기 작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그림으로 일깨워줍니다. 김덕기의 그림은 ‘행복 바이러스’입니다.     


전시 정보

제목: 김덕기 초대전 <눈부신 햇살 아래서>

기간: 2020310일까지

장소: 포스코미술관

작품: 회화, 조각, 영상 등 50여 점     


<즐거운 울릉도-섬들과 등대가 보이는 바다풍경>,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25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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