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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07. 2020

7년 만에 장편소설 내놓은 김영하의 말

김영하 《작별 인사》(밀리의서재, 2020)

김영하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걸 전제하고 감히 이야기하자면, 김영하의 언어는 쉽습니다. 문장 구조와 낱말 선택이 가독성을 한껏 높여줍니다. 언제 다 읽었나 싶게 술술 읽히죠.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쉽다는 것이 곧 가볍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 쉽게 쓰기가 어렵게 쓰기보다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이라도 글을 써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이 소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이 소설은 분명히 SF라는 장르의 자장 안에서 읽히는 작품입니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이 지적한 것처럼, 김영하는 “장르적 코드를 작품에 제대로 버무린 작가로서 가장 먼저 떠올릴만한 얼굴” 중 한 명입니다. 2월 2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김영하 작가는 과거 학창 시절의 독서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한 가지 먼저 언급해두자면, 김영하 작가는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말도 굉장히 잘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작가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무렵에 제가 다니던 학교에 영어반이라는 특별활동반이 있었는데요그 반에 들어갔더니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라든가그분이 아마 SF 팬이셨는지 아니면 남자 고등학생들이 읽기에 이게 좀 괜찮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페이퍼 백을 우리더러 사라고 하셔서 사가지고 읽었어요그때 굉장히 재미있었고요     


아서 C. 클라크의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든가그것도 역시 인공지능 아주 초기의 할이라는 굉장히 공포스러운임무지향적인 로봇이 등장하지 않습니까그런 것도 어린 시절에 굉장히 저한테 깊은 영향을 미쳤고요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같은 것은 제가 2010년에 묶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소설에 <로봇>이라는 단편으로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그때 자기가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그런 여자 얘기거든요그래서 그 단편에 이미 그게 좀 들어 있어서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꽤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습니다그래서 자기가 인간이라고 믿는 어떤 인간이 아닌 존재또는 자기가 로봇이라고 믿는 인간둘 다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넣었고요그밖에 사실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서 여러 가지 학술서들예를 들면 인공지능의 윤리라던가 이런 것들을 관련된 책들은 보기는 했지만딱히 뭐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파고든 건 아니에요.”     



소설의 내용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하는 표현들이 보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기자간담회 자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내용이죠. 출판 담당 기자로 일하는 저 또한 운이 좋은 거고요. 그런데 이다음에 이어지는 작가의 말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있지만, 가감 없이 인용해 보겠습니다.     


왜냐면 저는 소설은 상징과 비유도 말하는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여기에 물론 어떤 인공지능도 나오고 휴머노이드도 나오고 하지만저는 아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은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에 느낀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한 비유로서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해요그래서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것인지즉 우리가 인간으로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가 지금 굉장히 저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을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 봐야 할 것이냐격리해야 할 것이냐자기네 나라로 추방해야 할 것이냐이것이 사실은 인간으로 받아들이냐 마느냐의 중요한 문제입니다그래서 인간이냐로봇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인간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그 사람이라는 것은 나의 동료로 받아들이고 내가 모든 노력과 자원을 동원해서 그 사람을 구해야 하고 치료해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할 때 우리는 인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것이 감염자또는 외국인 이랬을 때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서 아그것은 우리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때 저는 그것이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저께인가 그저께 소송 결과가 나와서 유심히 봤는데 저는 사실은 그 인공지능 이런 문제보다는 그런 분들을 더 관심 있게 봅니다메르스 사태 때 환자로 돌아가신 분의 부인이 제기하신 소송이 2,000만 원인가 배상을 받는 선에서국가로부터 배상을 받는 선에서 끝났는데 그분의 사연을 보면 기가 막힌 게 남편이 메르스 환자로 진단된 이후에 한 번도 만나지도 못했다는 거예요거의 격리되어 있었고 심지어 화장할 때까지도 가족이 볼 수 없었다는 거예요그것은 사실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죠그것은 환자이고 전염원이라고 본 것이죠감염원이라고 국가가 처리해 버린 것입니다.     


국가가 이렇게 처리해 버린다는 것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국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죠이 사람을 위험한 질병을 갖고 있는그것은 공중보건을 위해서는 적당하지만 이런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 우리가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가 이런 문제들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또 사람들이 최근에 느끼는 공포 중에는 내가 만약에 감염자가 된다면 죽고 아프고 이런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로부터 배제되는 것이잖아요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고나는 감염자로 이름 매겨지고 사라지는 것이니까요사회에서연결망에서그것은 영원히 가족을 못 만난 채 메르스백 몇번이었던가요그것도 사람 이름사람 대신에 이름으로 불렸잖아요. 182번 환자 이런 식으로 불렸는데.     


그런 식으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에 대한 공포인데 사실은 그런 것들은 많이들 느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래서 그런 것들을 비유로 받아들이시지 않을까또 우리가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는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지만또 어떤 다른 맥락다른 국가다른 어떤 상황에 가거나 또는 어떤 특정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이유로 그냥 또 아무 나라의 국민도 아니게 되어 버릴 수 있는 거잖아요그런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고요그래서 그런 것들을 아마 보시리라고 생각하고요.”     


‘장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과 긴밀하게 조응하고 있음을,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꽤 많은 공을 들여 출간한 이 책의 표지 그림은 테이프 아티스트로 유명한 조윤진 작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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