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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18. 2020

바로 이 사진, 푸른 눈의 아프간 소녀

절대로 잊지 못할 순간이 있습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죠. 눈을 통해 뇌리에 깊이 각인된 어떤 이미지. 그것은 끊임없이 소환되고 환기됩니다. 사진 속 눈빛에 시선을 맞춥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가. 사진 앞에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 겁니다.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말을 머금은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죠.     


아프간 소녀, 나시르 바그, 페샤와르, 파키스탄 1984


2010년 4월 8일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걸린 이 사진은 제게도 익숙한 이미지였죠. 하지만 사진에 담긴 이야기가 뭔지, 누가 이 사진을 찍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푸른 눈의 아프간 소녀 사진은 전시장 초입에 가장 크고 돋보이게 걸렸습니다. 마음속에 숨겼던 뭔가를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더군요.     


조금은 겁에 질린 듯 무언가를 말하려는 맑고 푸른 눈빛. 여기저기 낡아서 헤진 누더기를 걸친 이름 모를 아프간 난민 소녀. 1984년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이듬해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를 장식합니다. 소녀의 얼굴은 단숨에 분쟁과 곤궁으로 얼룩진 20세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됩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불과 세른넷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Steve McCurry)는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종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어떤 면에서 보면 아주 순결하고 대단히 위엄을 갖춘 결연한 모습이죠.”     


연출이 필요한 인물 사진이란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동시에 연출이야말로 철저히 사진가의 수완이자 능력이라는 점도 우리는 알죠. 어떤 사진가가 특별히 비범하게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스티브 매커리의 인물 사진은 관람객에게 마치 말을 걸어오듯 깊은 눈빛을 보여줍니다. 그 평범한 얼굴에서 배어나는 짙은 여운이 진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죠.     


매력적인 색감과 구성이 빛나는 스티브 매커리의 작품엔 보도사진의 미덕인 진솔한 기록성에 예술적 미학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보도사진을 충격적인 장면의 기록이 아닌, 영혼이 담긴 한 차원 높은 예술로 승화시켰다! 스티브 매커리가 ‘살아 있는 영상 언어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진실의 순간을 담기 위해 전 세계 분쟁지역과 오지를 찾아다닌 30여 년 여정이 전혀 헛되지 않았던 겁니다. 스티브 매커리는 제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그것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전 전시회 도록을 꺼내 다시 열어본 까닭은 이 사진이 국내 경매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1984년에 촬영한 필름을 2009년에 디지털 C-프린트로 뽑아냈고, 사진 뒷면에 작가의 서명과 매커리 스튜디오 인장이 있다고 나옵니다. 경매번호 85번. 매커리의 사진이 국내 경매에 나온 건 극히 드문 일입니다. 추억을 소환하는 이 강렬한 이미지는, 코로나 사태로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경매 당일인 3월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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