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무진의 소설 《김유신의 머리일까?》와 《인더백》
20년 가까이 글로 밥 먹고 살았는데도, 글이란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쓰면 쓸수록 두려움도 커지더군요. 그나마 내 이름으로 내는 글은 온전히 내 책임이니 그렇다 칩니다. 이따금씩 남의 글에 관해 뭔가를 써야 할 경우가 생깁니다. 그 부담은 실로 어마어마하죠. 고작 몇 줄에도 몇 날 며칠을 끙끙대는 게 다반사입니다. 돋보이게는 못할망정 누를 끼쳐선 안 되니까요. 남에게 부탁받은 글에 더 정성을 쏟게 되는 이유입니다.
어떤 책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책의 추천사입니다.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 추천사를 썼다면, 큰 고민 없이 선뜻 책을 사보게 되는 거죠. 차무진의 장편소설 <인 더 백>이 제게는 그랬습니다. 출판 잡지 《기획회의》를 들춰보다가 이 소설의 광고를 봤습니다. 제가 전작하는 작가 김탁환의 추천사 가운데 한 대목이 인용돼 있었죠.
“박력 넘치는 소설이다. 백두산 폭발과 식인 바이러스의 창궐, 두 사건을 교묘하게 엮어 한반도 전체를 흔든다. 근미래를 다루면서도 현대사를 소환하는 뜨거운 상징들이 곳곳에서 용천수처럼 솟구친다.”
이 정도면 읽겠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도 남죠. 그래서 사다가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뒷날개 속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진공청소기 같은 소설! 작가의 관심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포괄할 만큼 방대합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에서부터 가족과 관계, 종교와 구원, 문학과 예술, 삶과 죽음 등 역사와 문명을 둘러싼 숱한 문제의식이 끊임없이 명멸합니다.
이 소설을 낸 ‘요다’는 잡지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임프린트입니다. 이 소설은 ‘요다’라는 이름으로 나온 ‘요다 픽션’의 첫 책이기도 하고요. 장르문학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봅니다. 그런데 작가는 할 말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업 작가로 나섰다가 결국 팔자에도 없는 배관공이 되고 마는데, 전업 작가의 막막함을 토로하는 아래 구절은 작가가 작심하고 쏟아낸 자기 경험담이 분명합니다.
“예술인들을 지원한다는 그 기관에서는 장르 소설을 쓰는, 단 한 권의 장편을 낸 그에게 기금을 주지 않는다. 기관은 단지 취미로 수필을 쓰는 부잣집 부녀자들, 건너 알거나 가까이 아는 지인들, 아니면 매번 잡지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작가들만 선택한다. 그들은 늘 무언가에 선정되었고 유럽에서 공짜로 한철을 지내다 온다. 그럴 때마다 그는 꼭 근사한 차기작을 내놓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글을 못 써서 그렇지.”
순수문학의 변방에서 한껏 푸대접받아온 장르 문학가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는 것으로 위안이 될지 모르겠군요. 장르문학에서 꽤 멀리 떨어져 지내온 저 같은 이에게도 읽힌 것을 보면요. 내친 김에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지 마음먹고 고른 것은 처녀작 《김유신의 머리일까?》였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뒷날개 속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야심만만한 데뷔작!
근사한 이야기로 세상에 나서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오래 공들여 이 소설을 준비했을까 싶더군요. 실제로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세 번의 겨울을 보냈다고 ‘작가의 말’에 썼습니다. 《삼국유사》를 탐독했다고 나름 자부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소설에 인용된 《삼국유사》의 대목들을 모르는 것은 아님에도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의 세계는 깊고도 넓었습니다. 내가 《삼국유사》를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작가의 최신작과 처녀작을 나란히 읽으면서 두 책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를 비교해 보니 그게 또 흥미롭더군요. 두 소설 사이의 시차는 9년. 그 사이에 작가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작가가 낸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 더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겠지만, 9년이란 시간이 만들어낸 그 ‘변화’를 추측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뜻밖에도 독서의 즐거움은 이런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1974년에 태어났다.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유명 게임회사에서 수석 개발자로 일했다. 유희(遊戱)는 영원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 후 온라인 게임 만드는 일을 그만두었다. 10년 이상 게임을 개발하면서 러시아 여인의 몸매에 변형된 일본식 갑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북유럽 요정들이 우리 젊은이 문화의 현실임에 소심한 울분이 터졌다. 우리 이야기를 하며 놀아보고 싶었다. 『김유신의 머리일까?』를 시작으로 우리의 것으로 이야기판을 벌이는 스토리텔러로 살고자 한다. 게임 만드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책 읽는 것보다 논문 읽는 것을 더 즐긴다. 시간 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논문을 출력하는 것이 취미다. 현재 창작그룹 ‘백작’을 결성해, 홍대 앞 작업실에서 매일 논문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 《김유신의 머리일까?》 작가 소개
2010년 장편소설 『김유신의 머리일까?』로 데뷔했다. 201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해인』은 미스터리적 색채와 문학적 깊이, 정밀한 역사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서브컬처 작품으로 한국 장르문학의 또 다른 영역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2018년 『해인』의 세계관을 확장해 『모크샤, 혹은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 1, 2』를 발표했고, 2019년 한국 고전을 좀비로 재해석한 앤솔러지 『좀비 썰록』을 발표했다. 단편으로는 미스터리 격월간 문예지 <미스테리아>에 실린 「비형도」(13호), 「마포대교의 노파」(24호)가 있다. - 《인더백》작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