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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23. 2020

위대한 성취의 밑거름이 된 이순신의 젊은 날

김헌식 《청년 이순신, 미래를 만들다》(평민사, 2019)

이순신 연구자 가운데는 비전공자가 제법 많습니다. 전공자도 아닌 이들이 관심을 품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겠죠. 짐작하건대 그 ‘각성’은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이순신을 잘 몰랐다는 뒤늦은 깨달음 → 이순신을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결심. 어떤 이는 난중일기를 비롯해 이순신 장군에 관한 기록들을 직접 찾아서 번역하고 책을 씁니다. 또 어떤 이는 틈만 나면 전국의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과 유적지를 찾아다닙니다. 그럴 때마다 무수하게 많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고, 또 그만큼 잘못 알려진 것들이 가슴을 후려칩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헌식 씨는 방송을 통해 대중문화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지금까지 펴낸 저서 목록만 봐도 관심사가 얼마나 폭넓은지 알 수 있죠. 특히 이순신의 리더십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이미 10년 전에 《이순신의 일상에서 리더십을 읽다》(평민사, 2009)란 책을 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이순신의 청년 시절에 주목한 또 다른 이순신 연구서를 내놓았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순신의 청춘을 40세 즈음으로 봤습니다. 이순신의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불혹(不惑)은 청년기가 아니라 장년기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영감 소리를 들었을 나이입니다. 그 시절엔 10대에 결혼해서 일찍 자식을 낳는 게 보통이었고, 평균 수명도 그리 길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도 저자가 이순신의 청춘을 40세 남짓으로 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순신을 이순신으로 만든 그 모든 경험이 그 시기를 전후해 집중적으로 축적됐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삶은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줍니다. 더불어 존경의 마음도 더 크고 깊어지죠.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의 삶에 다가가 보려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유익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들도 곰곰 되새겨 보면 전혀 뜻밖의 면들이 새롭게 보이는 경우가 많죠. 저는 무릇 독서란 그렇게 굳어진 생각에 균열을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겨 있는, 제가 몰랐던 사실들보다 그것들이 가리키는 어떤 현실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이고요.     


예컨대,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이순신에 관한 수많은 기록을 섭렵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기록은 이순신 본인의 기록인 《난중일기》와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인 ‘장계’입니다. 여기에 조선 왕실의 공식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이 있습니다. 이 밖에 다른 사람들이 이순신에 관해 쓴 기록들이 따라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이충무공행록〉입니다. 이순신 사후에 쓰인 숱한 전기들의 전범으로 여겨지는 기록이죠.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 씨가 펴낸 《난중일기》(글항아리, 2018)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순신에 관한 기록은 꽤 많습니다. 이 책에 인용된 것만 해도 이민서가 쓴 〈명량대첩비〉(1686)가 있고, 《홍길동전》의 작자로 알려진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도 이순신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최유해가 쓴 〈이충무공행장〉, 유형이 쓴 〈행장〉, 이항복의 〈고통제사이공유사〉, 숙종이 현충사에 내려준 편액, 정약용의 《경세유표》, 신채호의 〈이순신전〉까지 이 책에 인용된 이순신 관련 기록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들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의아하게도 다른 인물도 아니고 이순신에 관한 기록들을 전공자나 연구자가 아닌 평범한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나 통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동안 이순신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이 시중에 나와 있음에도 이런 1차 기록물들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접근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들을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죠. 물론 전문가나 연구자의 몫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순신 연구자 가운데 왜 비전공자가 많은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분명 답답함이 있었을 겁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너무나 큰 간격이 있는 겁니다. 누군가 중간에서 징검다리를 놓아줘야 하죠. 저는 상당수의 비전공자가 이순신을 다시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순신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이순신이 성장한 충남 아산이라는 환경, 그리고 하급 무관 시절 함경도 변방에서 치른 전투 경험에 주목합니다. 아시다시피 이순신은 남들보다 늦게 과거 준비를 시작했고, 원리와 원칙을 지키는 곧은 성품 때문에 출세도 더뎠습니다. 백전백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는 그냥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그런 빛나는 성취에 이를 수 있었던 밑거름을 이순신의 청년 시절에서 찾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거기서 더 뻗어나가는 독서를 부추깁니다. 읽은 책에서 가지를 쳐서 더 깊이 읽어나가면 앎이 한결 풍요로워지리라는 것은 자명하죠.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성대중의 《청성잡기》를 구해서 펼쳤습니다.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지만 여기에 실린 이순신에 관한 기록은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 시대를 풍미한 선비가 남긴 기록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다음엔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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