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78) 성북구립미술관 기획전 《1946, 성북회화연구소》
지금이야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학원에도 가고 문화센터 강좌도 들을 수 있지만, 그런 게 없었던 시절에는 그림을 향한 목마름을 채워줄 공간이 귀했다. 동양화에서는 청전 이상범의 청전화숙이나 고암 이응노의 고암화숙이 화가 지망생들의 좋은 배움터가 됐다. 그렇다면 서양화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던 화가 지망생들은 어디서 그림을 익혔을까. 해방 공간에서 바로 그런 역할을 한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북회화연구소였다.
지금의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살았던 이쾌대가 1946년에 설립한 성북회화연구소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리 길게 잡아도 4년 남짓 존속했지만, 이곳을 거쳐 간 화가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거점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쾌대를 필두로 남관, 이봉상, 권진규, 신영헌, 김창열, 전뢰진, 심죽자 등 훗날 한국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중요한 화가들이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그렸다. 성북회화연구소의 존재를 증언하는 최초의 신문 기사는 1947년 9월 13일 자 『한성일보(漢城日報)』다. 이쾌대가 성북회화연구소를 설립한 건 1946년이었지만, 이듬해인 1947년 9월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연구생을 받기 시작하며 미술교육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중앙신문(中央新聞)』도 1947년 9월 21일 자로 관련 기사를 실은 걸 보면 그렇다.
“성북회화연구소를 이쾌대 외 6명의 지도로 지난 10일 개소했는데, 연구 부문은 석고상, 인체, 정물(유화, 수채, 파스텔), 등으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2회에 걸쳐 지도를 하게 됐는데, 정기지도 외에도 응한다고 하며, 입소비 3백 원, 매월 연구비가 2백 원인데, 회화자료는 각자 부담으로 입소 희망자는 수시로 동 연구소인 돈암동 458-1로 신청하기 바란다고 한다.”
“해방 조선의 미술문화 향상을 도모하고 아울러 신진 예술가를 양성하고자 그간 화단의 중견작가 이쾌대, 남관, 이인성, 이봉상, 이규상, 이해성, 백수제 씨는 회화연구소를 계획 중이던 바 이번에 준비가 완료되어 지난 15일부터 돈암동 458-1번지에 성북회화연구소를 개설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1일 3회 오전, 오후, 야간 연구 시간을 두고 각자 개별로 연구하기로 하며 수시 작품발표회도 개최할 것이라 한다.”
해방 이후 전쟁 직전까지 짧은 기간 존속한 성북회화연구소의 희미한 자취를 다시 찾아내 불러낸 건 바로 같은 성북동에 들어선 성북구립미술관이다. 굳이 따지자면, 성북회화연구소가 성북구립미술관의 가까운 조상인 셈이다. 2009년 문을 연 성북구립미술관은 잃어버린 핏줄을 다시 찼듯 성북회화연구소의 실체를 밝혀줄 자료를 꾸준히 조사했고, 그 덕분에 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화가들의 작품이 하나둘 발굴되면서 성북회화연구소의 역사가 비로소 서서히 베일을 벗었다.
그런 미술관의 오랜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성북구립미술관의 2026년 첫 기획전 《1946, 성북회화연구소》다. 이번 전시에선 성북회화연구소에 몸담았던 예술가 30여 명 가운데 12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성북회화연구소는 해방 공간에서 저마다 정치적 노선을 내세워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이던 미술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그림이면 충분했다. 이념을 묻거나 따지지 않았고, 구성원 자격에도 아무 제한을 두지 않았다. 특정한 유파나 사조를 신봉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십분 존중했다. 타인을 구속하지도, 스스로 구속받지도 않는 예술적 자유야말로 성북회화연구소의 ‘정신’이었다.
성북회화연구소의 중심이었던 화가 이쾌대의 유명한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으로 시작하는 1부 ‘성북회화연구소의 시작’에선 성북회화연구소의 탄생과 운영 과정을 보여준다. 2m가 넘는 대작을 그리기 위해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이쾌대는 1946년 돈암동 458-1번지에 있는 건물을 빌렸다. 이쾌대의 여러 대작 가운데 하나인 <군상 II>가 바로 성북회화연구소에서 탄생했다. 그림 그릴 장소가 필요했던 화가들과 그림 배우려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면서 성북회화연구소는 석고상, 인체, 정물 수업을 진행하는 어엿한 사설 미술교육 시설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이쾌대, 남관, 이인성, 이봉상 등이 수업을 진행했고, 오전과 오후, 야간으로 나눠 하루 세 번 연구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이쾌대에게 그림을 배운 조덕환의 인체 드로잉에서 당시 수업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강사로 일했던 남관의 그림 석 점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현실을 그리다’에서는 성북회화연구소 이후 화가들의 개별 활동을 비춘다. 성북회화연구소는 1950년대 문을 닫고 남산에 있던 시립미술연구원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윽고 전쟁이 일어나면서 화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면서 바로 그 전쟁의 체험이 화가들에게 붓을 들게 했다. 조덕환의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 그 참모들>과 심죽자의 <어머니와 두 아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6‧25 전쟁을 다룬다. 1970년대에 그려진 신영헌의 <동작(銅雀)>또한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연장에 놓인 작품이다.
조덕환의 그림은 아주 특별하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1952년 12월 4일 경기도 광릉 수도사단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약속대로 한국을 찾은 아이젠하워는 이승만과 함께 경기도 광릉 수도사단에서 기갑부대 기동과 포 사격 훈련을 참관했다. 이 장면을 촬영한 흑백사진이 남아 있다. 당연히 이승만과 아이젠하워의 만남을 군 소속의 사진사가 찍었을 것이고, 이 역사적인 장면을 기념하고자 나중에 조덕환에게 그리게 했을 것이다. 조덕환은 명실공히 일본 유학까지 한 화가였기 때문이다. 조덕환은 여러 사진 가운데 적당한 것을 하나 골라 세로 91cm, 가로 116.8cm에 이르는 커다란 화폭에 정성을 다해 그렸을 것이다. 조덕환은 이 그림 한 점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은 김창열의 1959년 작 <판자집>을 영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창열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이 그림의 존재를 내게 처음으로 알려준 건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1994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풍경의 변천전》 도록이었다. 그림만 봐선 어딘지 알 수 없는 이 그림이 서울의 어느 판자촌을 그린 거란 사실을 확인해 준다.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김창열》에 이 그림이 나왔으면 하고 내심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 전시에 출품되지 않은 바람에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이 작품이 나왔는지 모르고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구상 회화의 문법을 벗어나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도형으로 단순화해 짜맞추듯 배열한 화면 구성과 더불어 하양, 파랑, 빨강, 노랑 네 가지 색으로 어두운 화면 곳곳에 포인트를 준 뛰어난 작품이다. 나는 물방울보다 김창열의 이전 작품이 훨씬 더 좋다.
개인적으로 또 다른 수확은 신영헌의 그림을 무려 넉 점이나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근현대 전쟁 미술에서 신영헌은 절대 빼놓아선 안 될 중요한 화가다. 더구나 신영헌은 동시대에 활동한 어느 화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화풍을 구사했다. 신영헌의 그림은 풍경화마저도 화법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3부 전시 공간에 걸린 신영헌의 1971년 작 <한(限)의 장(章)>은 이 화가가 다루고자 했던 주제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작으로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신영헌에 대한 재평가를 기대한다.
3부 ‘예술의 부흥’에서는 다양한 행보를 보여준 성북회화연구소 출신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화가들은 특정 화파나 양식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연습하고 연구했다. 이쾌대는 “분위기에서 배워야지 누구한테 배울 생각 말아라.”라고 했고, 화가들 또한 어떤 장르나 양식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김창열은 훗날 자신의 대표 연작이 된 ‘물방울’을 언급하며 이쾌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조각가 권진규와 전뢰진, 끊임없이 자기 양식을 발전시켜 나간 남관, 이봉상, 신영헌, 인내와 끈기로 섬유예술에 천착한 정정희 등 뛰어난 예술가들의 뿌리에는 어김없이 성북회화연구소가 있었다.
단언컨대 올해 최고의 전시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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