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80) 신선미 개인전 《화실소사 畫室小史》
여기, 커다란 화실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이들이 있다. 화면 왼쪽 맨 아래 인물부터 보자. 두껍고 질긴 한지(韓紙)인 장지(壯紙) 표면에 넓적한 붓으로 뭔가를 바르고 있다. 종이는 먹이나 물감을 바르면 곧바로 스미기 때문에 안료를 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표면에 코팅(coating), 즉 막을 씌워서 한지의 스미는 성질을 바꿔줘야 한다. 반수(礬水)란 동물성 접착제인 아교에 식품 보존제로 많이 쓰는 명반(明礬)을 섞은 용액이다. 아교는 물기에 닿으면 밀려다니기 때문에 안료를 칠해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아교를 붙잡아줄 고착제가 필요하다. 이 성분이 바로 명반이다. 백반(白礬)이라고도 한다.
다시 그림을 보자. 화면 속 주인공이 아교와 명반을 섞은 반수를 넓적한 붓으로 종이 위에 바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업을 ‘아교 반수’라고 한다. 종이를 나무틀에 씌우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전통 채색화의 첫 공정이다. 이번엔 바로 위 인물로 시선을 옮겨보자. 나무 화판에 접착제를 바르고 있다. 종이를 화판에 씌워 고정하기 위해서다. 화판 네 모서리에 지지대를 덧대 놓았다. 제아무리 두껍고 질긴 장지라고 해도 사각형 테두리에 그냥 씌우면 종이가 울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릴 준비가 모두 끝났다.
한쪽에선 먹으로 선을 긋고, 다른 쪽에선 채색에 여념이 없다. 전통 채색화 제작의 전 과정이 이 그림 한 폭에 다 들어가 있다. 그림 속 인물은 모두 15명. 그런데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실은 한 사람, 화가 자신이다. 한국화가 신선미는 이렇게 화실에서 채색화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다. 채색화가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 그림이다. 창작의 전 과정이 그림 안에 들어가 있어서 우리 전통 채색화 제작 과정을 모르는 사람도 그림만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서양 미술의 전통에는 ‘화가의 작업실’, 즉 아틀리에를 보여주는 그림을 그려온 유구한 역사가 있다. 화가라는 자부심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전통 미술에는 화가의 작업실을 보여주는 그림이 없다. 화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이 담긴 그림은 더러 있어도, 온전히 화실만을 비추는 그림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화가는 양반이 아닌 중인이었다. 전통 시대에 화가는 그리는 재주를 가진 ‘장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환쟁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림 솜씨를 자랑할 만하다 여기지 않았던 상황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사대부 화가 관아재 조영석이 남긴 일화에서 확인된다. 조영석은 일찍이 뛰어난 그림 솜씨로 이름을 얻어 영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라는 어명을 받았지만, ‘한낱 기예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마땅치 않다.’며 거절해 관직을 박탈당했다. 심지어 자기 그림을 묶은 화첩을 꾸미면서 표지에 “남에게 보이지 말라. 범하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라는 경고문을 남기기도 했다. 봉건 시대에 화가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시대의 화가들은 남을 위해 그렸지, 자신을 위해 그리지는 않았다. 우리 전통 회화에 화실 그림이 없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신선미 작가가 세로 162cm, 가로 130cm짜리 화판 세 개를 이어 붙여 완성한 <채색화 이야기>는 화가의 자부심, 특히 채색화가의 긍지를 유감없이 쏟아낸 보기 드문 대작이다. 그림의 그림, 채색화의 채색화라 할 만하다. 그림의 디테일을 보면 화가가 한 땀 한 땀 얼마나 공들여 그렸는지 알 수 있다. 머릿결을 따라 흐르는 명암 표현이나 금가루, 은가루를 곱게 입힌 나비를 보라. 게다가 화가는 이 그림에 자신의 시그니처를 ‘숨은 그림’처럼 새겨 넣었다. 화면 왼쪽 맨 위에 보이는 장식장에 화가가 평소 작업할 때 즐겨 듣는다는 영화 <러브 어페어> OST LP가 있다. 또 하나, 왼쪽 맨 아래 종이 밑에 깔린 천 한쪽 귀퉁이에 붙은 상표 안에 화가의 이름이 숨어 있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건 화가가 허리 통증을 직업병으로 달고 살았기 때문.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인물의 자세와 표정이 그 증거다.
속도가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 채색화를 그리는 건 사서 고생하는 일이다. 색감 좋고 잘 마르는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면 얼마나 편한가. 품질 좋은 재료가 널린 세상이다. 나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면 어시스턴트, 즉 작업을 도와줄 보조 인력을 쓰면 된다. 요즘은 너도나도 다 그런다. 심지어 젊은 작가들조차도 그런다. 누가 저 까다로운 재료로 번거로운 과정을 감내하면서 속도가 나지 않은 전통 채색화를 굳이 그리려 하겠는가. 도무지 수지 타산이 안 맞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 채색화는 철저하게 인내와 끈기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오랜 노고와 정성이 오롯이 담긴 신선미의 그림은 믿음직하다. 쉬운 지름길 대신 에둘러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우직함과 완고함이 나는 좋다. 신선미의 그림은 ‘좋은 그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가 신선미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이다. 2023년 3월, 서울시 용산구에 있던 더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사랑가》를 취재하면서 신선미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당시 내가 주목했던 그림은 신선미 작가의 <덕혜>였다. 열세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 열아홉 살에 대마도주 집안과 정략결혼. 정신질환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하다 1962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온 비운의 황녀. 빼앗긴 나라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나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덕혜옹주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부모님을 보고 싶어했다. 덕혜옹주가 어린아이 같은 글씨로 써 내려간, 부모님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생전에 다시는 볼 수 없었던 딸과 아버지가 마침내 그림 속에서 만났다. 신선미 작가는 아버지 고종과 딸 덕혜를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녀로, 가장 행복했던, 꿈 같은 그 시절로 데려갔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의 꿈을 화가가 그림으로 대신 이뤄준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꼭 얼싸안은 모습이 가슴 찡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중요한 걸 깨달았다. 그림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었구나.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고종과 덕혜, 그림에서 만나다 (KBS 뉴스9 2023.3.2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32978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나는 동안 신선미 작가는 단 한 차례도 개인전을 열지 못했다. 몸이 자꾸 아파서 작업이 한없이 더뎌진 탓에 예정했던 전시 일정을 미루고 또 미뤄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3년 만에 여는 개인전은 소박하다. 신작을 많이 그리지 못해서다. 전시장에 걸린 9점 가운데 2016년에 그린 한 점을 뺀 8점이 2023년 이후에 완성한 것들이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 <채색화 이야기>가 올해 완성한 신작이다. 출품작 가운데 3년 전에 본 <덕혜>의 후속작이 눈길을 끌었다. 과거와 달라진 건 작가의 시그니처라 할 ‘개미 요정’들이 고종과 덕혜 두 사람의 재회를 축하하며 엎드려 예를 갖춘 모습을 더했다는 점이다. 깨알 같은 인물의 자세와 표정은 한결같이 진지하다. 화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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