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영향력도 비례해서 커지고 있고요. 그 덕분에 저도 요즘 장르소설 찾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답니다. 제 독서노트에 아예 월별 독서 목표 항목으로 장르소설을 끼워 넣었죠. 장르소설의 매력은 한계 없는 상상력입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독서를 가능하게 합니다. 기회 닿는 대로 힘껏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이미 읽은 분이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제가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국내에서 ‘슈퍼히어로’를 주제로 묶인 첫 단편집이 아닌가 합니다. 작품의 수준이 보증되는, 그러면서 제가 유일하게 직접 만나서 취재한 김보영 작가가 기획한 소설집입니다. 김보영 작가의 집에서 본 책인데, 시간이 꽤 지난 최근에야 읽었습니다.
수록된 작품은 9편입니다. 완성도에 다소 편차가 있기는 합니다. 순서 무시하고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눈길 가는 것부터 골라 읽었습니다. 김보영의 단편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예상대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주무르는 관록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른 김보영 작가는 군데군데 기발한, 그러면서도 뼈 있는 설정을 그려 넣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작품은 좌백 작가의 <편복협 대 옥나찰>입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를 잘 아는 분이라면 읽는 재미에 푹 빠질 수밖에 없죠.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의 이름을 작가가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남다릅니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dcdc 작가의 <월간영웅홍양전>입니다. 여성 히어로의 ‘생활 조건’을 반영한,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소설입니다. 책 뒷부분에 실린 <문자의 세계로 떠난 영웅>과 <슈퍼히어로 팬들이 쓰는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이 장르의 이해를 돕습니다.
차무진 작가의 소설 《인 더 백》이 영화 판권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인육을 먹는 장면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궁금하군요. 〈식스 센스〉급의 반전도 기대해 봅니다. 이 소설 덕분에 작가에 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야심만만한 처녀작 《김유신의 머리일까?》(끌레마, 2010)에 이어 두 번째 장편 《해인》(엘릭시르, 2017)를 읽었습니다.
한국적인 소재를 고집하는 작가답게 현대와 과거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상상력이 이 소설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합니다. 특히 여기서 이순신을?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 제1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칼을 뽑아 베어도 물을 다시 흐르고>를 읽어갈 땐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모릅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시대의 영웅이 작가의 상상 세계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답은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장르소설의 득세는 최근 출판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흐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출판사들도 아예 장르소설을 위한 임프린트를 만드는 추세더군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임프린트 ‘요다’가 대표적입니다. 차무진의 《해인》을 펴낸 ‘엘릭시르’는 문학동네 출판사의 임프린트입니다.
순전히 차무진 작가 때문에 집어 든 소설집입니다. 차무진의 <피, 소나기>를 읽다가 문득 황순원 문학촌을 취재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그때야 비로소 <소나기>를 제대로, 다시, 읽었습니다. 황순원의 제자 작가들이 <소나기 이후>의 이야기를 써서 책으로 낸 적이 있죠. 차무진의 소설 <피, 소나기>는 정확하게 여기에 부합하는 작품입니다. 소년을 남겨놓고 훌쩍 떠난 소녀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옵니다.
5편 모두 우리 고전과 근현대 문학 작품에서 발전시킨 이야기로 이뤄져 무척 흥미롭게 읽힙니다. 김성희의 <관동행: GAMA TO GWANDONG>은 ‘관동별곡’을 쓴 송강 정철에게서 소재를 가져왔고, 정명섭 작가의 <만복사 좀비기>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수록된 <만복사 저포기>의 좀비 버전입니다. 전건우의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 조영주 작가의 <운수 놓은 날>, 그리고 앞서 소개한 <피, 소나기>는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될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작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