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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04. 2020

1950~60년대 북한에서 펴낸 책들의 면면

《평양책방》(한상언영화연구소, 2018)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북한에서 펴낸 책들의 상당수는 월북 문인과 화가, 예술가들이 썼습니다. 남과 북, 어느 쪽을 선택했건 그들 대부분은 남과 북 모두로부터 배척되는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죠. 이 또한 전쟁이 낳은 비극의 단면입니다. 《평양책방》을 찬찬히 넘기면서 경계인이자 이방인이었던 그들이 세상에 남긴 흔적으로서의 책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 갤러리현대 인물화 전에 출품된 <가족도>의 화가 배운성(1901~1978)은 월북 이후에 북한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책방》에 배운성의 솜씨를 보여주는 그림이 여럿 남아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월북한 소설가 한설야(1900~1976)의 마지막 장편소설 《성장》의 삽화를 배운성이 그렸습니다. 도록에 소개된 그림은 다섯 점으로 모두 목판화입니다.     


    


1962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가 펴낸 조선시대 국문 고전소설 《보심록》의 표지 그림은 월북 화가 청계 정종여(1914~1984)의 작품입니다. 정종여는 근현대 미술 전시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한국 화가죠.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는 북에서도 꽤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홍도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1956년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펴낸 《우리나라 명인들의 이야기》란 책에는 을지문덕부터 주시경까지 우리나라 위인 10명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죠. 화가 중에선 유일하게 김홍도의 이름이 보입니다.     


김홍도 편을 쓴 사람은 월북 문인 중 한 사람인 근원 김용준(1904~1967)입니다. 도록에 소개된 책의 펼침 면을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과 <대장간> 두 점을 원본 그대로 그려 수록해 놓았습니다. 북한 사회에서 김홍도라는 화가를 어떻게 대접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도록을 넘기면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위인초상화》에도 김홍도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1957년에 출판된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위인 8명의 표준 영정을 엽서로 만들어 실었는데요. 김홍도의 표준 영정은 북한 화가 리팔찬이 그렸습니다. 혹시 김홍도의 초상화를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봅니다.     



김홍도의 흔적은 하나 더 있습니다. 1958년에 국립미술출판사에서 펴낸 《리조회화 명작집》의 표지 그림이 바로 앞에서도 본 <대장간>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대표적인 회화 60여 점이 수록돼 있는데, 도록에는 겸재 정선의 작품을 비롯해 5점을 소개해 놓았습니다. 소장처는 ‘중앙 미술 박물관’으로 돼 있군요.     



연암 박지원의 저 유명한 중국 여행기 《열하일기》의 첫 완역본이 북한에서 먼저 출간됐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북한 학자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가 북한의 국립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이 1955년이었습니다. 리상호는 유려하고 솜씨 좋은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국내에서도 2010년에 보리출판사에서 리상호 번역본이 출간됐습니다.     


 


화가 이쾌대의 형이자 당대 최고의 문예인이었던 이여성(1901~?)이 1957년 국립출판사에서 낸 《조선 공예미술연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 공예미술을 다룬 연구서입니다. 특히 도록에 소개된 펼침 면을 보면 우리 전통 그릇들을 종류별로 꽤 자세하게 그림과 함께 소개해 놓았습니다.     

 


앞서 《우리나라 명인들의 이야기》에서 김홍도 편을 쓴 근원 김용준은 1958년에 과학원출판사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펴냈습니다. 역시 논문의 펼침 면을 보면 고분벽화에 베풀어진 문양을 상당히 정교하게 그린 삽화가 수록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월북 예술가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죠.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1911~1969)입니다. 먼저 6․25전쟁 시기인 1951년에 출판된 《조선무도가 최승희》는 전쟁 시기에 중국에 머물며 무용 교육을 한 최승희를 소개하기 위해 고야문(顧也文)이란 중국인 저자가 쓴 책입니다. 책 표지에 ‘중국인민대학 도서관 장서’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고, 도록에는 최승희의 젊은 시절 사진을 실었습니다.     


또 하나는 1958년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민족무용기본》입니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인민 배우’ 칭호를 받은 최승희가 30여 년 무용 생활을 정리해 발간한 것입니다. 송경수라는 사람이 그림으로 풀이를 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도록에는 이 밖에도 일본의 무용 평론가 다카시마 유사부로가 쓴 최승희의 전기도 소개돼 있습니다.     


《평양책방》 전시를 기획한 김지혜 독립 큐레이터는 도록에 실은 <기획의 글>에서 북한 도서를 남한에 소개한 전시가 2006년 광주 충장서림에서 <책과 그림, 영상으로 만나는 평양전>이란 이름으로, 2008년 서울대 도서관이 재일 한국인 학자 김학렬 박사로부터 기증받은 도서 3천여 권 가운데 선별해서 일부를 선보인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을 밝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7월 3일부터 15일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평양책방》이 서울도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렸고요. 좋은 기회에 이 전시를 한 번 더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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