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초상화에 관한 여러 기록을 찾아보던 차에 지인 한 분이 제보를 주셨습니다. 북한에서 그린 이순신 초상화가 있으니 찾아보라고. 그분이 소개해주신 책이 《평양책방》입니다. 《평양책방》은 연극․영화 연구자인 한상언 씨가 그동안 수집한 북한 책 천여 권 가운데 250여 권을 추려서 2018년 7월 서울도서관에서 전시하면서 발간한 도록입니다. 억울하게도 저는 이 전시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전시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지인의 제보로 뒤늦게 북한의 이순신 초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리순신장군전》(국립출판사, 1952)에 수록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입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박태원은 이순신의 조카가 쓴 최초의 이순신 전기 <이충무공행록>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했을 정도로 단재 신채호 이후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로 꼽힙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수록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월북한 정치인이자 언론인, 화가, 평론가였던 이여성(李如星, 1901~?)이라는 인물입니다. 최근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재평가된 서양화가 이쾌대(李快大, 1913~1965)가 바로 이여성의 막내 동생이죠.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양 끝이 위로 올라간 눈매에 미간에 짙은 주름 두 줄기를 새겨 장군의 결연한 의지를 강조한 점이 눈에 띕니다. 이 초상화가 얼굴 부분만 그린 원본인지, 아니면 더 큰 그림에서 부분적으로 따온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림 원본이 남아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그런데 이 그림이 원본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또 다른 이순신 초상화가 《평양책방》에 실려 있습니다.
1957년에 북한에서 펴낸 《위인초상화》라는 책에는 우리나라 위인 여덟 분의 표준영정으로 만든 엽서가 실려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순신 장군도 당연히 포함돼 있습니다. 앞에서 본 이여성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립에 군복을 입은 모습이죠. 하지만 얼굴은 사뭇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초상화 아래 이순신 장군을 ‘전략가’로 소개해놓은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은 오택경(吳澤慶, 1913~1978)이란 북한 화가입니다.
북한에서도 이순신은 위인으로 추앙됐습니다. 그래서 관련 서적이 꽤 많이 보입니다. 《리순신 장군》(아동도서출판사, 1962)은 인민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출간된 이순신 장군의 전기입니다. 표지에 이순신 장군이 배 위에 선 모습이 보이죠. 뒷면을 장식한 거북선 그림도 꽤 공들여 그렸습니다. 표지와 삽화를 그린 이는 로의건이란 북한 화가입니다. 그 옆에 있는 《승리의 명량바다》(국립출판사, 1957)는 표지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표지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고, 누군가 그 위에 쓴 글씨도 보입니다. 이 책을 품고 있던 누군가의 흔적이겠죠.
《평양책방》은 아주 귀중한 책입니다. 여기서 수록된 책들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출간된 것들이죠. 많은 월북 작가와 화가와 예술가들의 흔적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도록의 만듦새도 훌륭합니다. 다음엔 이순신에 관한 기록을 뺀 다른 흥미로운 책들을 소개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