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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n 20. 2020

신라인이 쓴 화랑의 역사와 ‘미실’

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화랑세기』(소나무, 1999)

서양화가의 서용선의 단종 연작에서 영감을 받아 읽은 김별아의 소설 『영영이별 영이별』(해냄, 2014)에서 받은 감동이 김별아의 또 다른 소설 『미실』(문이당, 2005)을 읽게 했습니다.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2009년에 57쇄를 찍은 이 매혹적인 이야기 덕분에 2017년 5월, 이 책을 덮으면서 책 두 권을 더 읽기로 마음먹었죠. 하나는 김훈의 『현의 노래』, 다른 하나가 바로 『화랑세기(花郎世記)』였습니다.



제가 고른 건 이종욱 서강대 석좌교수가 1999년 소나무 출판사에서 낸 판본입니다.


우선, 『화랑세기』는 진위 자체가 희대의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이 기록을 옮기고 주석하고 해석한(역주해) 이종욱 교수는 머리말과 권두 해제에서 논쟁의 전말과 자신의 주장을 대단히 소상하게 정리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뒤에 자신의 논문 두 편까지 실어 놓았죠. 『화랑세기』 원문과 책에 수록된 글까지 모두 읽고 나니 진본이라는 이종욱 교수의 주장이 충분히 믿을 만하더군요.


『화랑세기』는 어떤 책인가. 540년에서 681년까지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였던 풍월주(風月主) 32명의 전기입니다. 바람과 달의 주인이라, 참 멋있는 표현이죠. 1대부터 32대까지 서른두 명 가운데 우리가 알만한 이름으로는 15대 유신공(庾信公)과 18대 춘추공(春秋公)이 있습니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신라를 대표하는 위인들이죠. 저자는 신라의 대학자 김대문(金大問)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판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4대 풍월주 이화랑조 뒷부분부터 발문까지 남아 있는 162쪽짜리 필사본, 다른 하나는 서문에서 15대 풍월주 유신조의 첫 쪽까지 남아 있는 32쪽짜리 발췌본입니다. 두 책을 합쳐서 서문과 풍월주 32명의 전기, 발문이 확보됐습니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필사본과 발췌본이 전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진위 논쟁이 촉발된 겁니다.



풍월주라는 말은 『화랑세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훗날 『화랑세기』를 인용한 것이 틀림없을 『삼국사기』에도 사다함의 전(傳)이 있지만, 풍월주란 용어는 안 보입니다. 김대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아주 짧게 언급돼 있습니다. <열전>의 설총 전을 보면 최승우, 최언위에 관한 짧은 언급에 이어 김대문에 관해 간단하게 기술돼 있습니다.


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의 귀족 자제인데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도독이 되었다. 전기 몇 권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가 아직도 전하고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가 편찬된 시대까지도 김대문의 저술들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신라인이 쓴 최초의 신라 역사’ 『화랑세기』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화랑세기』를 필사한 사람은 박창화(朴昌和, 1889~1962)란 인물입니다. 박창화는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궁내성 도서료의 조선 전고 조사 사무 촉탁으로 근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박창화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필사했다고 보면, 『화랑세기』가 일본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원본이 나온다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하겠죠.



화랑세기 전체에서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미실’입니다. 사다함이 사랑했던 그 여인. 한 시대, 아니 두 시대, 세 시대를 주름잡은 당대 최고의 미색(美色). 『화랑세기』에서 미실만큼 자주, 중요하게 언급된 인물은 없습니다. 아마 한반도 역사에서 최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향력 있는 여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라면 매혹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모든 것을 갖춘 당당한 여자. 소설이 나온 건 필연입니다. 참고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연기한 배우는 고현정이었습니다.


『화랑세기』는 1,30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가게 해주는 놀라운 타임머신입니다. 신라인의 눈을 통해 신라를 만나는 일은 낯설고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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