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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Aug 07. 2020

<신국보보물전>에서 만난 나만의 보물 3선

국보와 보물,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구. 그렇습니다. 과거의 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면, 애써 박물관을 찾아갈 까닭이 없겠죠. 국가가 국보와 보물로 지정한 유물이 뭔지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유물을 대면하는 까닭은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를 찾는 건 각자의 몫이겠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지정된 국보와 보물 157건 가운데 83건, 196점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참 오래 기다렸기에,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깨달음은 한두 가지가 아니죠. 평소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는 걸 몹시도 좋아하는 저는 무척이나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땐, 머뭇거릴 시간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신국보보물전>에서 제가 주목한 유물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마는, 특별히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 전시장을 돌다 보면 각자 자기 마음에 와닿는 유물이 틀림없이 있겠죠. 모든 유물에 똑같은 시간과 애정을 건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전히 제 마음에 든 보물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신라의 미소     


이 익숙한 유물의 정식 명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유물이죠. 수막새는 목조건축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됐던 기와를 일컫습니다. 얼굴무늬 수막새 자체가 워낙 희귀하기도 하지만, 이 수막새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빚은 유일한 사례여서 더 가치가 크죠.     


왼쪽이 상당 부분 깨져서 떨어져 나갔음에도 남은 부분에 눈 코 입이 모두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더욱이 저리도 치명적인 미소를 보여주는 물건이 어느 건물 기와 끝에 매달려 있었다니. 아마 그 건물을 오가는 이들은 수막새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던 이 유물은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박일훈이란 분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10월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됩니다. 미소로 보나, 사연으로 보나 보물로 대접받기에 손색이 없는 명품입니다.     


사실 이 유물의 존재는 사진으로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지만, 전시장에서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보고, 오래 봤죠. 잊을 수 없는 미소를 품은 수막새는 제가 이번 전시에서 첫손에 꼽는 귀중한 보물입니다.     



고려 나전     


나전(螺鈿)은 조개껍질을 이용하는 공예 기법이죠.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고요. 1123년에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도 《고려도경》에서 고려 나전칠기를 일컬어 ‘세밀가귀(細密可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 할 만하다. 그 정교함에 중국 사신조차 혀를 내둘렀던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 전해지는 유물이 20여 점뿐인 데다, 국내에는 겨우 몇 점만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일본 등 외국에 있죠. 게다가 나전경함은 현재까지 확인된 9점이 모두 해외에 있었다가,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에서 한 점을 사들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덕분에 우리도 드디어 한 점을 갖게 됐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경함(經函)은 경전을 담는 상자란 뜻입니다. 불교국가인 고려에서는 불교 경전을 이렇듯 고급스러운 나전칠기에 보관했던 겁니다. 멀게는 천 년 전의 유물이 이렇듯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 품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더 뜨거운 애정이 샘솟는 유물입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나 싶어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보고 또 보았답니다.     



피리 부는 악사     


국보와 보물 사이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눈 호강을 하다가 전시장을 떠날 무렵, 우연히 눈에 들어온 저 작은 유물이 제 발길을 붙들었습니다. 달걀 하나보다도 작은 저 유물의 이름은 <금동 가릉빈가상>. 경북 군위에 있는 사찰 인각사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군가 부처에게 간절한 소원을 빌며 바친 공양구(供養具)입니다.      


피리 부는 저 사람은 ‘가릉빈가’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입니다. 히말라야의 설국(雪國)에 사는 인두조신(人頭鳥身), 즉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신비의 존재죠.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극락정토(極樂淨土)에 깃든 존재이기도 합니다. 필시 이 물건을 공양한 이의 마음속에도 극락을 향한 염원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피리를 불고 있는 금동 가릉빈가상은 출토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작디작은 유물에는 옛사람의 마음이 담겼죠. 피리 부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마음을 더듬어봤습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보물을 만난 것이 제게는 이번 전시를 관람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답니다.     


■전시 정보

제목: <2017-2019 신국보보물전 – 새 보물 납시었네>

기간: 2020년 8월 30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국보와 보물 83건, 19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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