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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l 29. 2020

내가 커트 보니것을 전작하는 이유

커트 보니것 《카메라를 보세요》(문학동네, 2019)

소설을 쓰는 친구가 있었죠.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꽤 실력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께 특별 지도를 받았거든요. 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그 친구 단편소설이 실린 것도 봤죠. 한 번은 그 친구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는데, 아주 커다란 책장에 이중으로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제 생애 첫 독서 멘토였습니다.     


그 친구가 읽어보라며 빌려준 책 가운데 커트 보니것의 《제5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제본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내에는 정식 번역본이 아직 안 나온 상황이었죠. 소설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때 제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됐거든요. 강렬한 제목만 기억의 잔편으로 남았죠.     


어른이 된 이후 그 친구가 정식으로 등단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소설을 전혀 쓰지 않는 것 같더군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무튼,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제5 도살장》을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준 어마어마한 충격에 보니것의 작품을 전부 다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루이스 세풀베다의 매혹적인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그랬듯, 《제5 도살장》은 제게 보니것의 작품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절판된 것까지 해서 보니것의 웬만한 작품은 다 읽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회고록 《나라 없는 사람》 이후로 문학동네에서 나온 책들은 보니것의 미발표 원고나 연설문 등을 이것저것 모아서 편집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가치가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요. 그것도 하나하나 모아서 읽고 있으니까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아마겟돈을 회상하며》였고, 지난해 12월에 출간된 이 책을 이제야 읽네요. 보니것의 소설은 심각하게 웃깁니다. 그게 보니것 특유의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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