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흐름출판, 2020)
고고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뭘까. 할리우드 영화로 유명한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 박사? 그렇다면 그다음은? 말문이 자연스럽게 막히죠. 익숙한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이 바로 고고학의 세계가 아닌가 합니다. 고고학이라는 것이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어렵고 때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이들에게도 무리 없이 읽히는 갈증 해소 도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는 국내에 극히 드문 유라시아 고고학 전문가죠. 최근에 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권을 위한 답사에 참여했고, 책에도 그 이름이 여러 차례 언급됐습니다.
고고학자의 에세이라 호기심이 생깁니다. 책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고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죠. 게다가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깊이 음미할 부분들도 적지 않아서 여러모로 유익한 독서 체험을 제공합니다. 고고학은 한마디로 말해 죽어야 사는 학문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고학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죽은 자의 흔적을 더듬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고학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은 특히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 고고학자들은 빛바랜 유물을 끄집어냈을 때, 자연스럽게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했을 순간을 떠올린다.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파도를 넘어오면서 제 색을 잃는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눈부신 순간을 살아가려고 늘 애쓰지만 정작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눈부신 순간은 항상 뒤늦게, 그것도 지나가버린 옛날을 생각했을 때 문득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미 빛바랜 오래 전 유물들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지금을 눈부시게, 지금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의 전언은 책을 읽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에 길들대로 길든 우리의 뇌 구조는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자는 <인디아나 존스>의 예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계적으로 고고학 하면 떠오르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생각해보자. 영화 속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보물을 손에 넣는다. 사람들은 존스 박사의 액션에 숨죽이고 그가 얻는 전리품에 환호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인디아나 존스>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다면? 일본인 고고학자가 석굴암을 깨부수고 불국사를 폭파하며 자기가 원하는 황금 금관을 찾아간다면? 그런 영하에 박수를 치면서 볼 한국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 역시 책읽기가 주는 가장 큰 혜택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명하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고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14장 <문명은 짧고 인생은 길다>의 마지막 두 단락을 옮겨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강인욱 교수가 참 성실한 학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 교수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화려한 것만이 늘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실패가 늘 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삶은 항상 성공한 채로, 늘 실패한 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 것도, 실패했다고 해서 낙담할 게 없다. 중요한 건 마음에 달려 있다.
실패했을 때 기꺼이 물러설 줄 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생존해서 살아 있다면 결국은 더 큰 꽃을 피우며 재탄생될 수 있다. 우리의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세계는 좀 더 깊고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