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is not Free
밥먹듯이 퇴사하는 남편을 둔 아내의 속마음
돈을 벌어야 아이들도 키울 수 있는데 이놈의 남편은 퇴사를 밥먹듯이 한다.
이제 겨우 40이 되었는데 벌써 5번이나 퇴사를 했으니 밥먹듯이 퇴사한다는 표현을 써도 적절할 듯하다.
그래도 이 남편이 퇴사하는 이유가 딴짓하려고 하는 퇴사는 아니니 퇴사에 적극 찬성은 안 하지만 굳이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먹고살만큼 넉넉한 형편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내 삶이 그렇게 살아왔다.
회사보다 외적인 일이 많아서 퇴사하다.
글을 다 쓰고 나서 아내에게 보여주어야겠지만, 위의 글이 아내의 속마음과 상당히 비슷한 꺼라 생각해본다. 아이도 셋이고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한 달 생활비도 적지 않게 들어가는데 퇴사를 허락한 아내는 이 세상에 유일하진 않더라도 상당히 소수에 속할 거라 확신한다. 사실 이런 아내를 두었기에 나도 육아와 집안일에 상당히 신경을 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 등교도 늦어지고 아이들도 유치원,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결국엔 멘붕에 빠지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이러한 형편을 알고 자유롭게 일하라고 했지만, 자유롭게 일하라는 표현 속에는 복잡함이 숨겨져 있다.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지만 결국 일은 해야 하는 것이라는 최소한의 조건 말이다.
아이들 셋 보면서 업무를 하려니 정말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여러 번 왔다. 그 순간을 넘겨 넘겨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나의 아내도 힘겨움을 토로하고(웬만해선 힘들어 히지 않는다. 정말 불굴의 여자인데..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정말 숨이 몇 번씩은 넘어간 순간을 또 넘기고 넘긴 것이다.) 그 힘겨움이 내 어깨에 쌓여서 나는 더더욱 모든 걸 끌고 가기에는 한계를 넘었다.
모든 퇴사하는 이들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회사일보다 그 외적인 일이 많고 그로 인해서 회사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 필수적이지만 그 범위가 지나치면 인생 자체의 행로를 이탈할 수 있기에 항상 나는 그 경계선을 넘는 것을 사실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결국 5번째 회사도 퇴사하기로 완전히 굳게 다짐했다. 왜냐하면 사장님이 또 말릴 것을 알기에 이번에는 내 편에서 완전히 다리를 끊어버려야 하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맘이 약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끈질기게 지금의 상황을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회사
2번씩이나 퇴사를 이야기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9월까지는 퇴사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그것을 수용하기에는 나의 상황이 조금은 벅차다. 이번에는 사장님도 내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수긍을 하셨다. 그렇게 나의 5번째 회사, 5번째 퇴사가 결정이 되었다.
첫 번째 회사도 사실 퇴사할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고,
두 번째 회사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모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5번째 퇴사는 정말 마지막이다. 더 이상 이 회사의 연을 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다시 회사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먼길을 건너왔다.
이번이 마지막임이 분명하다.
이제는 프리랜서의 길로..
또는 사업의 길로..
아니면 그냥 전업주부의 길로..
뭐가 될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회사원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없다.
아니 그러하길 희망하고 바란다.
3월까지만 하기로 이야기했으나, 사람이 조금 늦게 뽑아지면 4월까지 기한을 달라고 사장님이 이야기했다.
그래 빠르면 3월, 늦어도 4월에 내 인생에 회사원으로써의 생활은 끝이 난다.
이제는 자유롭지만 내 삶을 스스로 더 책임져야 하는 삶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삶을 살아왔지만, 역시 자유로움 속의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책임감 있는 삶이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듯하다.
남들도 어렵게 하는 회사일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회사일을 벗어나서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
결국 이 마음의 평안이 더 넓고 큰 인생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제는 직장인이 제일 부러워하는 퇴사원(?)이 되었다.
그러면서 사장들이 부러워하는 월급쟁이(?)의 삶이 마감된다.
미국 여행 시 워싱턴에서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인들을 기리면서 세워진 기념탑에 세워진 문구가 내 삶에 작은 영향을 끼쳤다.
Freedom is not free.
나는 퇴사라는 대가를 치렀다. 그 대가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한 것이다.
그 덕분에 자유를 얻었지만 이 자유에는 분명 안정적인 월급 이상의 대가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그 대가가 생각보다 치열하더라도 나는 이 자유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