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구조조정의 피바람

4번째 회사도 1년이 안되어 퇴사하다.

by 김씨네가족

부푼 꿈을 가지고 4번째 회사에 출근했다.

집에서 10분 거리, 그리고 사장님의 애틋한 대우, 워라밸이 보장된 회사 정책.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이런 회사라면 내 평생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맘 잡고 회사를 잘 다녀보자.'라는 생각은 아주 잠깐 할 수 있었다.


나에겐 갑자기 다가왔지만, 이미 예견된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원인은 역시 매출이었다.

워라밸, 좋은 사람들, 가족 같은 분위기 모두 좋은 말인데, 그것이 지켜지려면 기본적으로 이윤을 내는 게 목적인 회사라는 조직체는 매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것 없는 어떠한 감언이설도 단순한 마케팅 용어로 전락될 수 있다.


작은 회사였기에 조직이 많거나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가 속한 팀에는 나, 그리고 나 위에 부장, 그리고 그 위에 이사님(부서장)이 있었다. 그 위로 사장님이었다.

우리는 세일즈와 마케팅을 담당했기 때문에 회사가 어떻게 될지 가장 빠르게 알 수 있고 책임을 져야 하는 팀이었다


가장 먼저는 우리 팀이 구조조정의 첫 번째였다.

그 대상은 나 위에 부장, 그리고 그 위에 이사님.

결국 회사 입사한 지 3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내 윗분들이 모두 구조조정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그 여파는 우리 팀뿐 아니라 연구소 등 다른 팀으로도 모두 전가되었다.


결국 핵심적으로 필요한 소수인원만 남았고,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잘못된 일들, 매출 하락으로 오는 다양한 고통들을 감내해야 했다.



매출 하락으로 오는 고통들을 감내하는 것,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사내의 분위기였다.

계속되는 좋지 못한 소식들, 당장 다음 달 월급을 주고 나면 회사가 자금이 바닥이 난다는 소문들. 우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 안 좋은 소문들은 소문에 소문을 더해서 직원들의 사기를 완전히 떨어트렸다. 그렇게 떨어진 사기들로 인하여 직원들은 일하기보다는 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일의 능률과 회사의 매출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판단에 있어서 실수들도 많이 하게 된다. 그 실수들은 또 소문이 더해져 악담으로 넘쳐나고 회사는 점점 더 항해의 방향을 잃어간다.

그런 시간을 1년이 조금 안되게 보냈다.


나는 어쩌다가 또 이런 회사를 들어오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괜히 내가 구조조정 되지 않고 윗분들이 구조조정 된것이 미안했다.

나야 아직 갈 곳이 많지만, 그분들은 나이도 있고 해서 마땅히 갈 곳이 많지 않을 텐데..라는 과한 걱정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분들은 지금 잘 이직하여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어렵게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미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회사가 이런 위기를 당하면 실력이 없거나(?) 필요가 없거나 너무 무겁거나(연봉이 높거나) 등의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구조조종의 1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생을 직장 생활했던 사람들은 이런 구조조정 뒤에 자생력이 거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다.

회사가 망해서 구조조정될 수도 있고,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회사로 옮기는 기회마저 놓쳐버리는 사람들은 정말 절망적일 수 있다.

평생 해온 것이 조직 속에서 한 부품으로 생존했기에, 그 조직이 아닌 스스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이런 경험이 나로 하여금 더더욱 회사생활을 빨리 끝마쳐야 된다는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회사가 망하는 걸 경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다.


정말 회사가 망할 것 같았다. 재무구조도 그렇고 사업에 대한 방향성도 그렇고 앞으로 에 대한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대표의 의지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걸 확인했을 때는 더 이상 이 회사를 다닐 순 없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더 이상 이 회사를 다닐 수 없다고 이미 결정은 했다. 이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다음 후임자가 오기까지 다니기로 대표와 이야기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실행을 했다. 회사생활의 장점도 이해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회사생활의 단점이 크게 다가왔으므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 위주로 찾아봤다.


다행히 이 시점에 아내도 창업해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 더 퇴사를 하고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방법들을 실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도 혼자서만 가족을 책임져야만 했다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회사생활을 계속해야 했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사실이다.


기다렸던 후임자가 왔고, 업무 인수인계를 해준 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때마침 2년 월세로 계약한 집도 마무리되는 시기였고 아내가 시작한 창업도 우리가 있던 곳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월세로 임시로 생활했지만, 계속 월세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마지막 기회가 대출을 하여 집을 사는 것이었다. 회사에 속해 있어야 대출이 잘 되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 수 있기에 그 기회의 마지막을 붙잡았다.


결국 퇴사 전에 대출도 성공하고 집도 구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단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있었던 건 대출로 산 집, 그리고 자유로운 시간, 마지막으로 희망이었다.

그 희망이 우리를 이끌어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작해서 망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컸다. 어차피 가진 게 없었으니 모든 걸 잃어도 우리 생명만 부지하고 있다면 뭔들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역시 바닥에 처해지면 더 생존력과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는 듯하다.


그렇게 우린 1년 가까운 시간을 생존했다. 아니 생존이라는 표현보다는 넉넉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결국 1년을 버틴 이후 통장의 잔고를 확인한 덕일까? 아니면 내가 조직에 속해 있지 않아서 외로워서일까? 다시금 마지막으로 회사를 한번 다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그 덕에 지금의 5번째 회사도 들어오게 되었고 나의 경험은 조금 더 넓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확고해진 것이 하나 있는데, 역시 나는 퇴사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남자라는 확신 같은 것이 더 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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