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 퇴사를 위한 전략, 육아휴직
노동자가 갑이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동자는 노동자의 마인드를 버려야만 한다.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시간을 저당 잡힌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시간과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
그 대가로 조금은 쉽게 돈을 매달 똑같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경력이라는 이력서도 추가된다.
뿐만 아니다. 공휴일에 놀아도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업무시간에 8시간을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봉급은 똑같이 들어온다. 물론 계속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갑의 위치를 가지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돈을 주는 자,
돈을 받는 자.
역시 갑은 돈을 주는 자이다.
자본주의에서 이 구조를 벗어날 순 없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갑 비슷한 위치가 되었다.
원래 나의 목적은 퇴사였는데 그 의지가 너무나 강했는지 사장님이 중간 협상을 제안했다.
그건 바로 휴직.
그래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회사에 적을 둔다는 말.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 편에서 더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럼 육아휴직.
그렇게 퇴사에서 육아휴직으로 나의 계획은 변경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아이들도 보고 집안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나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 정도다.
1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이 4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나는 다시 노동자가 될 수 도 있으며,
내가 꿈꾸던 일을 성취할 수도 있다.
노동자가 갑이 되는 세상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노동자의 신분을 벗어나는 것이 더 빠른 길이다.
노동자와 사업주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건 너무 철없는 생각인가?
내가 만약 사업을 한다면,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에 '돈'의 힘을 최소화하고 싶다.
그래서 갑, 을이 아닌
갑, 갑
또는 을, 을 같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
갑이 존재하지 않는 을만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세상이 그렇게 되진 않더라도
최소한 내 주변은 그렇게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퇴사하는 이유고
그것이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이유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서 자신을 맘껏 표현하며 살아갈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