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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Aug 07. 2020

바다야! 만나서 반가워!

 누군가를 처음 만났는데, 키는 2M가 넘고 체구는 UFC 선수로 보이고 툭툭 내뱉는 말투가 상당히 거칠다면 첫인사에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만나서 반갑다는 첫인사의 기분은 그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 설렘과 두려움 사이를 오고 간다.


 아이들은 보통 어른에 비해서 키가 절반 정도 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을 보는 건 어른의 시선과 동일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크고 위협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위협과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조금 더 상냥함과 친근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한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금방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변한다.


 크고 넓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앞에서 어른이나 아이나 힘없는 존재로 인식되기는 동일하다. 그런 우리의 작고 왜소함을 알고 있는 탓인지, 바다는 별 말이 없다. 그저 모든 이들을 말없이 받아주는 것 같다. 조용한 파도소리를 낼 때는, "지금 와서 함께 놀자!"라는 뜻을 소리로 바꾸어 전달한다. 조금은 시끄럽게 파도소리를 내면서 파도의 크기를 키울 때는 "지금은 혼자 있고 싶으니 조금 떨어져 줄래?"의 뜻을 파도의 소리로 전달하려 애쓰는 듯하다.


 바다와 우리 여름휴가를 책임져 줄 숙소 사이에는 2차선 도로 하나가 가로막고 있다.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바다와 지내보는 건 난생처음인 듯하다. 어쩌다 보니 7박 8일이라는 조금 긴듯한 휴가를 냈고, 그 휴가를 책임져 줄 좋은 위치의 숙소를 잡게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는 분명 축복이다. 여행은 익숙하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의 신선함을 발견한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하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그곳도 금방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여러 가지 불편한 사항들을 직면하게 해 주고, 결국 여행만 한다고 삶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여행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우리의 일상을 다시금 새롭게 해 줄 큰 동력을 부여해주는 놀라운 사실에 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것.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처해지는 것. 이 두 가지를 겪게 되면 익숙하고 지루했던 평범한 일상이 다시금 여행지를 떠났을 때의 설렘과 비슷하게 기대감을 부여해 준다. 항상 새로운 게 있을 수 없듯이, 익숙하던 일상을 장기간 벗어나면 그 익숙함은 점점 잊혀 가고 그 잊힘과 동시에 그 익숙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새로움과 기대로 다가오게 된다.



 


 바다는 그렇게 우리에게 신선함과 새로움을 선사해줬다.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그 끝을 도무지 알 수 없는 경계선, 그리고 그 경계선을 날아다니는 갈매기 때들, 그리고 상쾌한 냄새까진 아니지만, 바다가 가진 씀쓸함과 삶을 힘차게 살아낸 사람들에게서 풍겨지는 듯한 바다 냄새,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모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깔깔깔'대는 웃음소리들, 인스타에서 보는 꾸며진 근육질의 남자는 아니지만 바다의 거친 세계를 몸소 담고 있는 듯한 가드들의 새까맣게 탄 근육들.


 이 모든 것들을 제공해 준 원천은 바다였다. 말도 없고 숨결도 느낄 수 없는 것 같지만 여전히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바다의 힘이 미치고 있음을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저 너무나도 작고 연약한 인간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대단한 듯 하지만, 대단할 수 없는 존재의 인식으로 인해서 뭘 그렇게 욕심을 내면서 놓지 못하고 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게 된다. 바다는 나의 위치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있어서 겪게 될 크고 작은 일들 사이에서 좀 더 여유 있고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그 소스를 주는 듯하다.


 바다야 만나서 반갑다.

 너는 두려움과 설렘과 신선함과 삶의 애환과 기쁨을 너무나도 큰 그릇에 담고 있구나!

 그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전달해주니, 나 역시 너의 그 넓고 광대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닮고 싶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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