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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Aug 26. 2020

빼앗긴 아버지

어제저녁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7살, 4살 되는 두 딸아이가 기차놀이를 함께 하면서 놀았다. 보통 4-5살 때 많이 하는 놀이인데, 막내가 먼저 이 놀이를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언니와 오빠가 동참했다. 그런데 놀이할 수 있는 건 적고 서로 원하는 바와 힘이 다르기 때문에 금세 시끄러워졌다. 시끄럽고 다시 잘 놀기를 반복했지만 놀이 자체가 즐겁게 끝나진 않았다. 


어제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오늘 아침에도 막내가 놀이를 시작하고 언니도 동참했는데, 내가 아들은 이 놀이에서 빠질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내 나름대로 설명을 했다. 설명에 있어서 부족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이 놀이에 계속 참여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둘째에게 다양한 제안을 하면서 조금씩 게임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아침시간이고, 곧 시끄러워지면 곤히 자고 있을 밑에 집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다시 한번 첫째 아이에게 이 놀이에서 빠질 것을 이야기했다. 내 언어에 조금의 화가 함께 섞인 채로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은 행동으로 옮기긴 했지만, 아들의 눈빛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분명 섭섭함과 상처가 있을 것을 난 알았다.


이런 상황에선 나도 괜히 속상하고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잘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옆에서 조용히 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요즘 자기 아들과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사실이었다. 요즘이 아니고 문제는 계속 쌓여갔었고 그 해결책을 몰라서 방황하고 있던 나였다.

지금 시점에서 자녀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을 알고 내 삶의 많은 방향들을 바꾸었는데, 그 갈길을 몰라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내의 조언이 내 머릿 통을 때렸다.


"자기도 아버지를 사회에 빼앗겨서 그래!"


나의 아내의 과거 가정사를 들으면, 누구나 깨어진 가정이라고 공감한다. 그만큼 좀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나의 과거 가정사를 들으면, 그 누구도 깨어진 가정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한국사회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가정사다.

그런데 이 평범한 가정사의 대부분이 사실은 깨어진 가정임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80년대에 태어난 나의 아버지들은 한국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대명제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게 사회의 분위기였든, 개인이 선택한 거였든 대부분의 서민들과 중산층들은 이러했다. 부유층이라고 제외될 순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 사회를 발전시켜야 했으므로 그 시대 아버지의 부제가 지금의 많은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고 본다.



그래 나는 사회에 빼앗긴 아버지를 통해 자라난 아이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가정 내에서 아빠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 적이 없다.

책들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배우지만, 실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고 새롭게 개척해야 할 곳이다.

그 과정이 여간 어렵고 힘든 게 아니다.


그렇게 나의 문제점이 과거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갔고, 그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사회에 온전히 헌신하고 가정에는 정말 최소한의 역할만 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아버지가 옆에 계셨지만, 그리고 그가 나를 구타하거나 모욕하는 일은 없었지만, 어떠한 깊은 정서적 유대감도, 아들과 어떻게 친밀한 대화를 하는지도 배워본 적이 없다.

배워본 적 없는 걸 내가 하려니 힘들고 고된 것이었다.


그래도 사회로부터 아버지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으니,

나의 자녀들에게만큼은 사회로부터 아빠를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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